찌르다

(thrust to the throat)

-공병선 감독 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찌르다>는 『데미안』의 유명한 첫 문장이자 성장 서사의 보편을 성실히 따르는 작품이다. 한정된 단편의 시간 속에서, 작품 이전의 주희의 서사를 현현하는 배우의 얼굴은 단연 눈에 띄며, 과잉되지 않은 유려한 편집의 솜씨 역시 훌륭하다.


그러나 <찌르다>를 단순한 웰-메이드 성장 영화로 해석하기에는, 직조된 너른 이야기의 폭이 아깝다. 작품의 진정한 면모는 성장 서사의 전형적 틀 너머에 자연스레 흡착시킨 페미니즘의 시각이다. 영화의 세상 속 이름을 가진 인물은 주희와 수정뿐이다. 이름을 부여받은 대상은, 단순한 관념이 아닌 생동하는 존재가 된다. <찌르다>의 독해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 남성과 이름을 부여받은 주희와 수정이 쓰인, 엔딩 크레딧에서 다시금 시작되어야 한다.


공간적으로도 검도장은 대개 그렇듯, 편견 안에서 남성들의 공간으로 상정되어 왔다. 더구나, 대표적인 힘의 상징인 ‘검’이 남성 사회와 궤를 함께 해 왔던 것은 따로 주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병선 감독의 <찌르다>는 거칠게 말하자면 결국, 남성 사회 속 주희와 수정의 이야기다.



(스포일러 有)


단순한 성장 세계의 금기가 아닌, 남성 사회의 금기인 ‘찌르기’는 단어의 의미 차원에서도 새로운 어감이 부여된다. 즉, 프로이트를 빌려와 말하자면 검-찌르기는 남근-삽입의 노골적 상징이다. 이때, 주희의 관장을 향한 결말의 찌르기는 남성 중심 사회 와해를 향한 전유 행위는 아닐까.


<찌르다>는 앞서 언급했듯, 보편적 성장 서사의 문법을 따른 웰-메이드 성장 영화이며 동시에 전복적인 정치적 시선을 보여준다. 검도장에서 자연스레, 남성 인물의 등장을 떠올린 나는 <찌르다>에 호되게 찔렸다. 13분의 짧은 시간 동안 다층적 서사를 구축한 감독을 위시한 모든 스태프와 배우에게 경의를 표한다.


(제18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