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리뷰단


제18회 경쟁부문 <종달리> 리뷰


<종달리>의 바람



<종달리>에서 영화의 기술적 요소는 퇴행한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색채를 잃었다.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다시, 다리를 땅에 박아버렸다. 스크린은 ‘말’을 잊어버렸다. 감독은 영화가 가장 완벽했던 시기라는 토키 도래 직전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일까? 하지만 결미에서 색채의 회복과 ‘말’에 대신하는 ‘배경음’이 삽입되며 전환된다. 마무리에서, 현대적 형식이 회복되는 것은 본 작의 고전기 형식 차용이 단순한 지적 허세로서의 시대착오가 아님을 짚어준다. 앞 문장은 다시 읽어주길 바란다. <종달리>에서 현대적 형식은 ‘회복’된다. 그렇다면, <종달리> 앞에 선 관객은 질문해야한다.


“작품에서 현대적 형식과 함께 소실된 것은 무엇인가?”


혹자가 말했듯이, 방금 전의 질문에도 ‘질문 안에 답이 있다.’ <종달리>에서 소실된 것은 ‘현재성’ 그 자체다. 성아와 이제는 죽은 아버지를 남겨두고 성일과 어머니가 서울로 떠난 그 때, 두 인물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성실과 성아는 현재에 있으나 종달리의 과거를 살고 있다. 기억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하며.

전술했듯 남매(인물)와 현재(시간)가 현존하지 못하는 반면, 공간으로서의 종달리는 작품 속에 유일하게 활동한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장소 자체인 것처럼, 인물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 때 종달리는 그 자체의 공간이 된다. 사건의 장소가 아닌, 자체로서의 공간. ‘말’은 잊었으나, ‘소리’는 잊지 않은 영화는 그 공간의 존재성을 더 강조한다. <종달리>의 음향 파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람소리’일 것이다. 제주도의 종달리에는 바람이 잦다.

즉, 제목이 주지하듯 <종달리>는 결국공간에 관한 영화다. 두 인물에게 작별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지난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것도, 화해할 기회를 주는 것도 결국 종달리다. 성일과 성아가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떨어졌을 것처럼, 문제는 ‘말’ 따위로 손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깊은 관계일수록, 한 번 깨어진 골은 그 너비가 넓기 마련이다.


성아의 집에서 형광등이 꺼져버린 것은, 성일이 떠나기 전 날 형광등을 새로 갈아준 것도, 성아가 성일을 집으로 갈 때 바래다 준 것 역시, 그저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였을지 모른다. 연락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나도 종달리에서 마주치길 바란다. 당신에게 <종달리>의 바람을 빌어, 조심스레 사과하고 싶다.


(제18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