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OO)>의 오서로 감독

Q.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대구단편영화제에 ‘오오’ 혹은 ‘콧구멍’이라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참 애매한 것 같다(웃음). 현재 졸업한 학교인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애니메이션과 3,4학년 학생들의 졸업작품 을 지도하고 도와주는 TD(technical director)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건 나로서는 부업이고, 메인은 역시 제 작품 준비하고, 애니메이션 제작하고, 일러스트도 좀 그리고... 뭐 이것저것 프리랜서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



Q. 반갑다.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나?

처음 하고 싶었던 일은 애니메이션보다 ‘컨셉 아티스트’였는데, 게임이나 영화에 들어가는 컨셉 아트를 제작하는 역할이다. 중학생 때 ⟨스타워즈 2 Star Wars: Episode 2 - Attack of the Clones⟩(2002)의 DVD를 보다가 제작과정 속에 나오는 컨셉 아티스트들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로봇, 기계 같은 것을 그리는 걸 엄청 좋아했었다. 만화가도 하고 싶었고 화가도 하고 싶었는데 뭔가 생각할 건 많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없더라. 그래서 스스로 이야기를 짤 수 있는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림만 그려도 먹고 살 수 있구나’ 싶은 게 ‘컨셉 아트’였다.


애니메이션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때다. 어릴 때 봤던 디즈니같은 만화를 고등학교 때 다시 보니, 어릴 때 본 느낌과 다르게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표정변화 같은 것들이 되게 재밌어 보이더라. 캐릭터들을 움직여주는게 너무 즐거워 보여서, 이야기를 짜고 연출하는 것 까지는 못하더라도 캐릭터를 움직이는 정도까지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분야를 갈아타겠다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도 하고 싶고 애니메이터도 하고 싶었다. 거기에 맞춰서 다니게 된 학교가 마침 3D 애니메이션, 2D 컨셉 아트, 작화, 애니메이팅까지 다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대학교 1, 2학년 때나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애니메이션으로 먹고 살겠다’ 라던지, ‘감독을 하겠다’ 이런 생각 전혀 없이, 그냥 ‘졸업하면 회사 들어가서 컨셉 아티스트로서 또는 애니메이터로서 역할을 하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단편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좀 알게 되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여러 독립 애니메이션 작가의 작품부터 디즈니나 픽사 같은 큰 회사에 있던 사람들이 만든 단편작품, 학생작품들을 찾아봤다. 미국의 칼아츠(Calarts)라던가 프랑스의 고블랭(Gobelins) 같은 곳에서 학생들이 만드는 단편 작품들을 보니까 이야기의 기승전결까지 생각을 안 하더라도 영화를 한 편 만들 수 있겠구나 싶어서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 마침 학교에서 졸업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15분짜리 만든 게 ⟨아티스트-110⟩(2014)이라는 첫 번째 단편이었다. 제일 길었던 거(웃음). 너무 보람찼지만 너무 힘들었다. 만드는 동안에 ‘영화제도 가보고 상도 탈 수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도 했지만 그건 젊은이들이 다 하는 생각이더라(웃음). 그 다음에 만든 작품이 ⟨Afternoon Class⟩(2015)인데, 그걸 만들고 나니 여러 영화제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 안시 영화제,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일본에 시그라프 아시아같은 곳에 초청되기도 하고, 상도 받았다. 그렇게 졸업하고 2~3년 동안 별의별 나라를 다녀보니까, 아직은 회사 다니는 것 보다는 내가 만들 수 있을 때 까지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나이 때 말고는 만들 수 있을 때가 없지 않은가(웃음). 제가 팬 메이드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있던 트랜스포머 애니메이션들이 있는데, 마침 감사하게도 그걸 사람들이 많이 봐주니까 어느 정도 수익도 들어오고, 덕분에 경제적 부담이 덜 드니까 들어오는 외주는 외주대로 하고, 제 작품도 계속 만들고자 한 거였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다(웃음).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오오', 또는 '콧구멍'이라고 불리는 이 영화 ⟨(OO)⟩(2017)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각본이 따로 없는, 그저 콧구멍에서 일어나는 가장 최악의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을 법 한, 또는 비염 환자로서 있을 법한 코에서 일어나는 많은 '싫은' 과정들과 느낌들을 진짜 직설적인 비유로 담아 냈다. 예를 들어 콧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온다던가 하는 것을 고장 난 수도꼭지에 비유했다. 물건을 통한 비유나 초현실적인 현상을 통해 ‘느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 속 순서대로 이야기하자면 처음에는 재채기를 엄청 하게 되고, 그 다음엔 콧물이 끊임 없이 나오게 된다. 재채기, 콧물, 그 다음은 코막힘이다. 코가 막히기 시작하면 코 속 분비물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더 찐득거리게 되는 것들을 표현했다. 결말은 판타지다. 뻥 뚫리는 느낌. 판타지를 통해 코 질병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결말까지 가는, 그냥 코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웃음).



Q. 나 또한 비염 환자라 너무 공감하면서 봤다. 분명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그렇다. 안 그래도 지난 주에 3일동안 내내 콧물 계속 나와서 힘들었다. 환절기 되면 좀 힘들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비염 때문에 너무나 많이 고생을 해 왔기 때문에, 한의사도 만나보고 병원도 가보고 했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은 못 주더라. 아버지도 원래 비염에 시달리셨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적으로 괜찮아 지셨다고 하더라.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웃음).



Q. 영화의 제목이 굉장히 특이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이 안 잡혔는데, 보고 나면 기발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짓게 된 제목인가?

글자로 그림을 표현한 거니까 제목으로서는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에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제목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처음에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하는 제목’을 고민했다. ‘단어 하나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 있을까?’, ‘뭔가 조합해야 하나?’, ‘재앙과 코를 합쳐서 ⟨코앙⟩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어 제목도 고려해야 하더라. 물론 한글 제목과 영어 제목을 전혀 다르게 짓는 경우도 있고, 아예 한글 발음을 영어로 표기해서 쓰기도 하는데, 제 작품은 그게 애매했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콧구멍 모양으로 하는게 어쩌면 가장 스트레이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생각한 게 ‘이모티콘’이었다. 괄호를 글자로 안 쳐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 덕분에 영화가 가나다 순 정렬에서 리스트의 맨 위에 나올 거 같다(웃음).



Q. 전작 ⟨아티스트-110⟩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구조인 반면, ⟨Afternoon Class⟩와 이번 작품 ⟨(OO)⟩는 내러티브가 있다기 보다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을 상상력을 동원해 길게 풀어놓은 것 느낌이다. 두 흐름 사이에 본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처음에는 이야기 중심으로 각본을 많이 써봤는데, 만들면서 '애니메이션 안 해!'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 많은 분량을 완성이라도 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 작품은 너무 어깨에 힘을 들이지 말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만들고 싶었다. ⟨아티스트-110⟩은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스케일도 작지 않은 15분짜리 영화를 1년 안에 만들어야 하다 보니 애니메이팅을 많이 못했다. 손으로 하나 하나 그리는 작업도 없었고, 아무래도 기계가 등장하다 보니 부드러운 느낌이 아니라 부위별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음 작품은 그야말로 애니메이팅을 하고 싶었다. 모양도 바뀌고, 손그림으로 작업할 수 있는 애니메이팅 자체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전에 메모해뒀던 소재들 중 '이번에 이걸로 만들어 야겠다' 하는 것들을 정해서 만든 게 ⟨Afternoon Class⟩였다. 오후의 나른한 교실에서 조는 내용. 그 전 작 품인 ⟨아티스트-110⟩은 로봇이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는 어느 정도 기승전결이 되게 확실한데, 그 다음 작품만큼은 진짜 움직임만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특히나 쉬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던 때라서 개인적인 심리 표현이랄까?(웃음)

⟨(OO)⟩의 경우에는 또 애니메이팅이라기보다 사물이나 현상 위주로 만들다 보니 그 전과 조금 더 다르다. ⟨(OO)⟩에서 도전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편집 같은, 좀 더 연출적인 부분이었다. ⟨Afternoon Class⟩에는 배경이 존재한다. 한 곳이긴 하지만 주변에 인물이 있고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만 카메라로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 작품에는 구체적인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걸 끝까지 빠져들어 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고민이 되더라. 이 현상들이 마지막 뻥 뚫리는 느낌까지 도착할 때까지 '지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서 편집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Q. 어떤 느낌에 대한 시각적 구현이 굉장히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대사 한 줄 없이도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들은 쉽지 않다. 그런 표현을 구상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 은유적인 표현들도 있을 거고, 되게 추상적인 표현들도 있을 거고, 어쩌면 대중에게 조금 어렵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고, 물론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기도 한 부분이 있는 작품들이 많다. 저 같은 경우는 그 대중과 추상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역시 결국에는 직설적으로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코를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코에 문제가 생기면 왠지 엄청 주무르고 만지게 되지 않는가. 또 코가 다른 부위에 비해 물컹물컹한 부분이 있으니까 애니메이션적으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뭉개거나, 잘라도 싹 잘릴 것 같기도 하고(웃음). 코를 뚫어야 하는데 구멍이 있으니 드릴로 쑤셔 넣기도 하고. 또 많은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동굴 모양도 있고.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감촉으로 느낄수 있는 물컹거림, 찐득거림, 딱딱하고 따가운 느낌들을 가지고 이 느낌과 가장 비슷한 사물을 생각해내서 화면에 옮기면 되겠구나, 하는 과정을 통해 구상했다.



Q.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나?

매 순간이 강조였다. 어쩌면 이건 편집의 전환이 키(key)가 되는 작품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들을 따로 보여주기만 하면 사실 큰 의미가 없고, 이걸 어떤 타이밍에 어떤 연속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상들의 연속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느낌이야’ 가 아닌 '이런 느낌들이야’를 말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쉴새 없이 몰아치는 답답함과 그 끝에 전달되는 통쾌함은 이미지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설득을 하려면 꼭 강렬한 한 가지 뿐만 아니라 여러 예시를 제시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느낌이었다.



Q. 차기작이나 향후 계획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최근 저의 개인적인 느낌인데, 요즘 좀 의기소침한 시기라서 조금 쉬고 있는 타이밍이다. 작년에 영화를 완성하고 이후로 쭉 일만 했다. 외주로 뮤직비디오 일도 하고, 일본에서 일을 맡기도 했다. 요코하마 시에 있는 블루라인 전철에 나오는 30초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쉴새 없이 일만 해서 제 작품을 못 만들고 있다(웃음). 너무 못 만들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 슬슬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제작비가 있어야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을 텐데, 일단 지금은 다시 일러스트나 캐릭터 디자인 위주로 쉬면서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차기작은 여러가지 소재가 있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정한 것은 없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은 충동 없이는 못하니까. 영상이 사실 다 그런 기분이 아니면 할 게 못 된다(웃음). 애니메이션은 특히 연속으로 못 하겠더라. 어차피 제 인생 모토는 1년 이상은 생각 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멀리 생각해 두어도 도중에 생각이 바뀌더라. 혹은 다른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Q. 작업은 다 혼자 해 온 것인가?

⟨아티스트-110⟩의 경우 6명이서 작업했고, 그 이후로는 모두 혼자 작업했다. 물론 음악 작곡을 해주신 분은 따로 계신다.



Q. 마지막 질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영화제에서 관심있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 많은 실사 영화들 사이에 애니메이션으로서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 뜻깊다. 애니메이션은 항상 애니메이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을 위주로 보여주게 되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낯선 분들에게 '이런 애니메이션도 있습니다' 하고 소개를 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감사하다. 영화 보시고 즐거우셨다거나, 공감하셨다거나 하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취재/글 오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