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데일리


[제 20회 대구단편영화제 DAILY 12] 8월 25일 <경치 좋은 자리> 임혜령, 박중권 감독 인터뷰 현장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8월 25일 <경치 좋은 자리> 임혜령, 박중권 감독 인터뷰 현장 스케치



Q. 영화의 제목을 <경치 좋은 자리>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박중권 감독) 로케이션 당시 촬영 장소에 처음 가 봤어요. 당시에는 물이 빠진 상태였죠. 

누군가에게는 경치가 좋은 장소이지만 임감독님께는 경치가 좋은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어요. 삶의 터전이었으니까요.

 ‘경치 좋은 자리’는 표면적 의미와 함께 반어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영화의 제목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Q. 전문 배우가 아닌 지역 주민들과 작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임혜령 감독) 저희가 영화를 준비하면서 수몰민들의 기억들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실제 주민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생활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죠.

 마침 제가 지역에서 영상 제작 교육도 하고 있던 참이라 직접 캐스팅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Q. 임혜령 감독님께 고향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A. (임혜령 감독) 시간이 흐르면서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영화 제작을 위해 오랜만에 방문하니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잊고 지낸 옛날 기억도 많이 떠올랐어요. 저처럼 자발적으로 잊혀진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경험을 갖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관객 여러분들에게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들에 대해 조명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드리고 싶었어요.



Q. 남편과의 통화 내용, 가방 속 안약 등을 통해 주인공의 시력이 좋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설정은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A. (박중권 감독)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부터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캐릭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 길이 굉장히 자주 등장하잖아요,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가는 정희의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죠. 이러한 설정을 통해 앞길이 희미한 처지를 나타내고자 했어요. 

그럼에도 주인공은 계속해서 걸어 나가죠. 우리 인생도 그렇듯이.



Q. 용담댐은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드라이브 명소'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수몰민들의 삶 위에 지어진 댐이라는 사실은 영화 감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난 영화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요, 

대조적으로 영화는 배경음악 없이 흘러가죠. 그래서 매우 담담하면서도 냉소적인 느낌까지 들었어요. 이러한 연출을 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A. (박중권 감독) 원래 제가 따로 준비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임감독님의 권유로 용담댐에서 <경치 좋은 자리>를 제작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장소에서 비롯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물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용담댐의 흐름을 보았을 때, 우리 삶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현재 용담댐은 그들에게 잊혀진 기억이죠. 이 사실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어요.

 한때 사랑받았던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기 마련인데 당연한 이치가 슬펐어요.

(임혜령 감독) 사실 저는 음악을 넣고 싶었어요. 

하지만 박감독님께서 날 것의, 무미건조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영화적 배경이 되는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같은 용담댐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고 제안하셨죠.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지금 완성된 작품을 보면 음악이 없어서 저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극명하게 와 닿는 것 같아요. 

옳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아름다운 모습의 용담댐과 죽은 자의 자리마저 옮겨야 하는 수몰민 모습의 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엔딩에서 주인공 정희가 물고기를 구하던 중, 유골함이 넘어지죠. 이 장면에서 연출하고자 하셨던 의도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박중권 감독)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지잖아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 존재들의 모습이 곧 극 중 정희이고, 엔딩 장면의 물고기인거죠.

(임혜령 감독) 정희는 내내 엄마의 유골함을 꼭 안은 채로 보내지 못 하고 있죠. 엄마를 보내줘야 정희도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면을 통해 설명하기보다 바람에 밀려 엄마의 유골함이 넘어짐으로써 그렇게나마 엄마를 보내는 정희의 모습을 담았어요.



Q. 영화가 시작되고 컷의 구도가 바뀌지 않고 상당히 긴 호흡으로 차 안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후에도 원 테이크나 한 구도에서 촬영된 부분이 많은데,

 최대한 다양한 구도를 잡으려고 하는 대중영화에 비해 관객의 취향에 따라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출하셨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A. (박중권 감독) 프레임 안의 프레임인거죠. 프레임 속에 인물을 가두고 싶었어요.

 프레임을 안에서 카메라 앵글을 높게 잡아 정희가 바라보는 창 밖 모습을 비춤으로써 왜소하고, 궁지에 몰린 것 같은 느낌을 준 거죠.

(임혜령 감독) 아마 영화 전개 상 가장 긴장감 있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Q. 연출에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편이신 것 같아요. 혹시 레퍼런스가 된 영화나 작품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A. (박중권 감독) 음... 저는 너무 많아서 어떤 한 작품을 콕 집어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좋아하는 감독님들이 너무 많아서요.

 지금 떠오르는 감독은 알렉산더 페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성향의 감독들이에요.



Q. 영화감독 데뷔작이라고 들었어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연출하셨는데, 힘드셨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A. (박중권 감독) 주인공 배우가 촬영 중에 임신을 하셨어요. 

영화의 흐름은 잔잔하지만 오래 걷거나, 배를 타야하는 촬영도 있어서 저희로썬 너무 걱정되고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영화의 일부분을 잘라냈어요.

 배우 분께서는 촬영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셨지만, 되려 저희들이 더 걱정돼서 배우를 교체하는 것 까지 고려했어요.

 그런데 너무 멋있으신 우리 배우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신 와중에도 괜찮다고, 촬영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셔서... 

저희로써는 기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죠. 그게 감독으로써 지켜야할 예의이고요.



Q. 영화에서 비포장 된 도로나 길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박중권 감독) 자연이 인간에게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 속으로 들어간 것이죠. 도로가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임혜령 감독) 집터는 다 무너졌는데, 아스팔트 도로는 그대로 남아서 이곳이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죠.



Q. 영화 대사 속 우리가 걷는 게 길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감독님의 길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A. (임혜령 감독) 작품을 완성하고 놀랐던 것이, <경치 좋은 자리>를 로드무비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웃음)

 아, 그렇게 이해할 수 도 있겠구나 싶었죠.

길이라는 것은 누군가 지나다니는 것 이상의 장소 그 자체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제작했어요.

 장소가 주인공인 영화니까요. 여 주인공은 장소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어요. 길은 하나의 형태를 가진 장소라고 생각해요.



데일리 - 진현정

촬영 - 이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