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 메신저


올 여름 대구 단편영화제에서의 관객분들의  '질문' 그리고 '소감'을 대신 전달 드리고 

감독님들과 배우님들의 '답'이 도착하였습니다!


제22회 대구단편영화제의 여운과 함께 

GV의 아쉬움을 달래보세요! :)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 차정윤


제21회 대구단편영화제 DIFF 메신저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 차정윤


Q1. 여자 인물이 본인의 삶에 가장 큰 부분이 존재하는 곳을 벗어나서 먹는 한 끼, 저는 인간에게 있어 그 한 끼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 생각을 해서 그 한 끼가 돈까스 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제목에도 쓰여진 것 처럼 '비' 라는 것이 이번 작품에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반가운 질문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극 중의 ‘은미’ 라는 인물이 영화 내내 머물던 양자강 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중요한 ‘선택’을 하기 전에 본인만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습니다. 그 장면이 이 인물의 영화 속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 한 끼의 메뉴를 무엇으로 결정할지에 대해서도 여러 고민을 했었는데,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된 백반 메뉴가 아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칼질’을 할 수 있는 메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메뉴들 중에서 비교적 일상적인 돈까스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밥을 먹는 장면 이후에 은미라는 사람에게 어떤 시간들이 펼쳐질지 상상해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말없이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 돈까스 한 끼가 제가 은미에게 해 줄 수 있는 영화 속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 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양자강의 2층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라는 한 줄이 작업 초반에 가지고 있던 설정이었고,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날씨에 따라서 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양자강의 단골 손님들로 구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시간적인 배경을 비가 자주 내리는 어느 장마철로 쓰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Q2. 비 내리는 양자강을 보고 궁금증이 많이 들어서 영문제목을 보았는데 영문제목의 ‘her’는 누구인가요? 여자 주인공 둘을 다 이야기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촬영을 마치고, 영화 후반작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영문제목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 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와서 영문제목을 지을지, 혹은 다른 의미가 통할 수 있는 ‘제 2의 제목’을 지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그리고 편집이 완료된 영화를 봤을 때 이 이야기는 답을 내려주는 영화라기보다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늘어놓는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 양자강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이 공간 속의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랐고 그러한 마음으로 ‘We need to Talk about Her’ 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제목의 ‘그녀’ 는 양자강의 이모였던 덕순이 될 수도 있고, 은미가 될 수도 있고 그 두 사람 모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제 마음이 조금 더 기우는 ‘그녀’ 는 이 이야기의 씨앗이 되어 준 은미 라는 인물입니다.


Q3. 감독님의 작품들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앞으로 차기작 계획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영화에 특히 더 집중하시는 이유도 알고싶어요!


저는 <나가요>, <상주>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 영화까지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에 가장 크게 염두에 두는 두 가지가 있다면, 영화 속 인물이 어떤 이유에서든 제 마음 속에 들어와 쉽게 떠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인물의 이야기를 제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인 것 같아요. 그 두 가지 모두가 충족되지 않으면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긴 호흡을 견뎌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들로 ‘비 내리는 날의 양자강’을 비롯한 영화들을 만들어 왔는데요, 결과적으로 모두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그렇게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에 특히 집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제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남성 감독이 남성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고, 꾸준히 그러한 이야기의 결을 이어나갈 때에 같은 질문을 받을까, 생각해보게 되고요. 머지않아 이러한 질문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고 나아가서는 ‘무용’해지는 때가 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로 구분 짓기 보다는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선행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여러 사람이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본인이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도 해서, 어렵지만 그럼에도 그 인물들을 마음에 잘 품고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어느 날, 이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참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