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ff choice 2
다큐, 자문자답하다
8/24(목) 13:30 오오극장
아직 명칭도 제대로 통일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는 현재 독립 다큐멘터리, 아니 한국독립영화 전체로 봐도 가장 창의적 결과물을 내놓는 분야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다큐멘터리 적 접근을 하건, 다큐멘터리 표현영역 확장을 위해 ‘재현’ 방식에 애니메이션을 도입하건 ‘수렴진화’를 통해 유의미한 결실이 속속 탄생하는 중이다. 섹션에 포함된 5편의 출발점은 제각각이다. <워크맨>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5:5를 이루며 전반부를 후반부가 해설하는 형태다. <꽃피는 편지>는 진입 턱을 낮추고 작가가 의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애니메이션을 전면에 내세운다.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는 실사가 구현하기 힘든 극단을 표현하기 위해, <호랑이와 소>는 구도의 효율화에 실사와는 차별화되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효율적으로 풀어낸다. <양림동 소녀>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다큐멘터리의 기본이라 생각하던 현실을 온전히 애니메이션 형태로 재현하는데 도달한다. 이미 저널리즘과 사진 등에서 일반화된 경계선 허물기가 영화적으로 시도되는 한국적 경과를 목격함으로서 지역 독립영화 창작 경향에 신선한 자극이 되길 기원하며.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객원 프로그래머 김상목)
DC2-1 워크맨 The Walkman
2016 | 애니, 다큐 | 11’5” | 다큐, 자문자답하다
DIRECTER_ 김혜련
CAST_ 김병수
STAFF_ 감독/각본/프로듀서 김혜련 | 편집/촬영 홍인기 | 음악/사운드 세르지미
CONTACT_ kaniseed@kiafa.org (배급사 씨앗)
전반부는 오일 파스텔 기법으로 그려진 원화로 구현된 판타스틱 애니메이션이다. 1926년생, 90살이 넘어 동네 노인들 틈에도 끼지 못하는 주인공은 워크맨으로 위장한 타임머신을 발견한다. 카세트테이프의 질감 속에서 노인은 벤자민 버튼처럼 시간을 거꾸로 달린다. 그 가운데 노인이 살아온 근현대사가 구현된다. 산업화 시대⇒새마을 운동⇒전후 재건기⇒전쟁의 참상⇒일제말의 풍경이 역사 다이제스트처럼 펼쳐진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노인은 이번엔 실사 무대로 배경을 옮긴다. 흥미를 위해 축약을 감수한 전반부를 보완하고자 감독은 구술 인터뷰와 애니 속 배경 해설을 통해 민중사적 접근과 (배경인 안양의) 향토사적 고찰을 동시에 도전한다. 평범한 이들이 자신의 작은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는 구술 작업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수반되는 인터뷰 위주 한계를 원색의 드로잉으로 표현해 몰입을 유지함은 물론, 옛날 사진이나 기록영상에 그치지 않고 지역 역사를 유랑하는 여정을 영상 지도로 구현해 향토사적 가치를 살려낸다. (김상목)
DC2-2 꽃피는 편지 A Letter That Bloom Flowers
2016 | 애니, 다큐 | 11” | 다큐, 자문자답하다
DIRECTER_ 강희진
STAFF_ 감독/각본/편집/촬영 강희진 | 음악 김동욱 | 사운드 표용수
CONTACT_ kaniseed@kiafa.org (배급사 씨앗)
20대 탈북 여성 두 명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착과정을 영상편지처럼 재구성하는 작업은 두 가지 측면을 조합한다. 그들이 자리를 잡기까지 겪던 사연과 애환이 절반, 시련 속에서 그들의 시선에 비친 남한 사회 현실이 나머지 절반을 이룬다. 말미에는 그들의 근황과 이 땅에 정착하려는 굳건한 의지가 희망을 실어 소개된다. 엔딩을 제외하면 10분도 안 되는 작업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 ‘금’과 ‘은’의 편지를 관객이 읽는 것 같은 체험의 시간을 선사한다.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차별과 편견, 그저 생지옥쯤으로 치부하고 마는 북한 땅에서 그들이 겪었던 삶의 기억, 시행착오 속에도 연극이나 노인복지 활동을 통해 한발두발 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과,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 이 땅에 뿌리내리는 여정의 목격은 흐뭇함과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반면, 이산자의 슬픔을 부치지 못하는 편지로 전하는 장면에선 디아스포라의 정한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안개처럼 뭉게뭉게 사라지는 단편의 미덕이 고스란히 응축된, 한국사회 ‘마이너리티’ 관찰의 기록. (김상목)
DC2-3 뱃속이 무거워서 꺼내야 했어 I only had to say
2018 | 애니, 다큐 | 11'28" | 다큐, 자문자답하다
DIRECTER_ 조한나
CAST_ 김연주
STAFF_ 감독/프로듀서/편집 조한나
CONTACT_ film_dabin@daum.net (배급사 필름다빈)
감독이 초반부에 자신이 겪은 상처를 소개할 때 유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절벽에서 심연으로 추락하는 기분일 테다. 뒤이어 여전히 불편한 관계인 엄마를 찾아간 감독은 질문지를 내민다. 왜 어릴 적 자신에게 그런 언행을 일삼았는지 묻지만 어머니는 잊었다거나 혹은 과하게 예민하다며 힐난한다. 자식이 엄마를 심문하는 태도라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거나, 내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느냐 항변하기도 한다. 잊으려는 자 vs 끄집어내 해소하고픈 자의 평행성은 무한히 반복될 것처럼 보인다. 엄마는 고백 혹은 변명으로 본인 또한 험난하게 성장했다고 줄줄 읊는데, 딸은 듣기가 싫다. 감독-딸은 뇌까린다. "결국 이딴 걸 닮았구나 생각했다." 아마 영화를 접한 많은 이들 뇌리에 아로새겨질 한마디다. 엄마의 말이 그저 지루해서가 아니다. 섬뜩하도록 자기반영적으로 느껴지거나 또는 대충 억지로 봉합되기는 원치 않는 태도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엄마의 과거로부터 감독 자신의 현재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상호 해독되지 못하는 모녀의 언어가 시각화되어 화면을 채울 땐 강박적 공포가 느껴질 정도다. (김상목)
DC2-4 호랑이와 소 Tiger and Ox
2019 | 애니, 다큐 | 8'18" | 다큐, 자문자답하다
DIRECTER_ 김승희 kshee140831@gmail.com
CAST_ 김연숙, 김승희
STAFF_ 감독/각본/프로듀서/편집/미술/동시녹음/사운드 김승희
<심심> (2014)과 <심경> (2017), 그리고 김박보람 감독 <피의 연대기> 속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감독의 드로잉 스타일은 현란한 원색의 풍요로운 구사와 화면을 채우는 아기자기함으로 일정한 경지를 이뤘다. 하지만 <호랑이와 소>는 단색 톤에다 얼핏 보면 낙서 같은 크로키, 그리고 모녀의 생애사적 접근으로 극단적인 차별화를 선보인다. 그 도전은 어릴 적 늘 ‘호랑이(엄마)’에게 주눅 들던 ‘소(본인)’가 가죽을 벗고 해방을 꾀하는 시도로 완성된다. 엄마는 싱글 맘으로 자립하기 위해 호랑이가 되어야 했다. 호랑이는 한국사회라는 정글에서 위협을 물리치기 위해 사나워졌다. 호랑이는 자식에게도 엄하고 거칠었다. 성장한 소는 호랑이가 자신을 낳은 나이가 되자 호랑이의 삶을 알아보는 것과 함께, 맹수가 되는 것 외에 대안은 없었을까 자신의 삶과 전망 속에서 성찰한다. 툭툭 던지는 것 같지만 개인사를 넘어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주제를 확장한다. 의도적으로 투박한 이미지 표현은 배경의 화려함에 한눈팔지 말고 이야기에 효과적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빅 픽쳐’다. (김상목)
DC2-5 양림동 소녀 Yangnimdong Girl
2022 | 애니, 다큐 | 29'57" | 다큐, 자문자답하다
DIRECTER_ 오재형, 임영희
CAST_ 임영희
STAFF_ 프로듀서/편집/촬영/음악 오재형 | 미술 임영희
CONTACT_ film_dabin@daum.net (배급사 필름다빈)
여기에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감독은 자신의 늙고 병든 엄마가 소일 삼아 작업한 그림일기를 활동사진으로 재구성한다. 주인공의 실제 모습은 도입부에 아주 잠깐 등장할 뿐이지만 30분 동안 그의 생애는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야기는 3부작 편성을 취한다. 1기는 '엄마의 소녀시대'다. 섬 소녀가 광주 유학 후 '문학소녀'로 성장하던 시절이다. 60-70년대 추억담은 회색으로 치부되는 그 시절 문화사 기행으로 손색이 없다. 2기는 그의 꿈을 놔두지 않던 어두운 시대와의 만남이다. 지역 사회운동에 몸담던 그는 80년 5월과 만난다. 3기는 이어지는 수난 속에서도 동지이자 반려를 만난 결실로 감독이 탄생하는 이야기다. 빈한한 삶이지만 젊을 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며 인생은 이어진다. 치열하게 산 주인공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평안과는 거리가 멀지만 후회하지 않는 지나온 삶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자식은 이 경이로운 소재를 놓치지 않았다. 지극히 사적인 인생 비망록⇒비범한 가족 시네마⇒한국현대사의 색다른 구술 아카이브가 그렇게 탄생했다. (김상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