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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는 카메라
8/26(월) 16:00 오오극장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다. 또는 카메라로 찍은 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낮에 해가 뜨는 것 만큼이나 당연했던 명제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찬욱이 <파란만장>을, 션 베이커가 <탠저린>을 아이폰으로 뚝딱 만들어 낼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카메라가 어디까지 더 작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했지만, 어느새 카메라의 본질적인 물성들마저 벗어던진 채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확장하는 카메라> 섹션에는 카메라라는 도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네 편의 작품을 모았다. 이 작품들은 카카오맵, 페이스타임, 포토샵, 심지어 포켓몬 G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들로 카메라의 대체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소위 데스크톱 필름이라는 것의 도드라진 한계로 다가올 수도, 또는 ‘영화’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영화는 끊임없이 스스로 움직여 온 살아있는 생물 같은 존재였다. 필름이 디지털로, 디지털이 VR로 형태를 바꾸며 영화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정의해 온 것처럼, 카메라의 정의 또한 쉼 없이 다시 이야기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시선과 고민으로 탄생한 네 편의 작품들이, 지금 여기서 당신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제25회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
DC2-1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 Nearby
2022 | 다큐, 실험 | 17’52” | 확장하는 카메라
- DIRECTOR_장윤미 ymjang@naver.com
- CAST_무수골 주민들
- STAFF_감독/각본/프로듀서/편집 장윤미 | 촬영 장윤미, 윤직원
로드뷰, 또는 거리뷰라고 불리는 위성 지도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면에 떠 있는 여러 각도의 화살표를 클릭해 앞으로 쭉쭉 나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 카카오맵 로드뷰를 통해 촬영된 <어떤 곳을 중심으로 하여 가까운 곳>은 장윤미 감독이 동물보호소에서 구조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던, ‘무수’ 라는 고양이의 동선과 삶의 행적을 따라간다. 무수가 발견되었던 도봉동 부근을 유영하는 카카오맵 화면 속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장소를 이동하는 그녀의 발걸음과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늘 피사체와 그것을 찍는 자기 자신을 일체화해내기 위해 존재했던 그녀의 카메라는, 얼핏 삭막하게 느껴지는 디지털 공간 속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온기를 갖고 움직인다. 생각하는 마음, 담아내는 마음에 도구의 경계 같은 건 있지 않다는 것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증명해낸다. 제25회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
DC2-2 FACETIME FACETIME
2022 | 다큐, 실험 | 5’42” | 확장하는 카메라
- DIRECTOR_Esther Yun Kong (공주안) ekong5@pratt.edu
- CAST_김영숙, 윤대오, 공기태, Minna Kim, Cherry Fu
- STAFF_감독/각본/프로듀서/편집/촬영/조명/미술 Esther Yun Kong (공주안)
제목에서 이미 짐작되듯 <FACETIME>에는 페이스타임 화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제목의 위치마저 점유할 수 있는 이유는, 페이스타임 촬영분을 가진 것뿐 아니라 바로 이 영화가 페이스타임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뉴욕의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공주안 감독은 페이스타임을 단순한 영상 통화 프로그램이 아니라, 모국인 한국 땅에 사는 조부모와 뉴욕에 있는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창구 이른바 ‘소통의 세계화’를 가능케 해주는 다리(Bridge)로 받아들인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모든 ‘영통’의 조각들은 고스란히 영화의 소중한 질료가 되고, 실험적인 창작물인 동시에 한 가족의 역사가 담긴 기록물로써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며 무료 영상 통화 플랫폼이 도입되면서,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쉬워졌다” 는 영화 속 나레이션은 이른바 기술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 제25회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
DC2-3 5분만 배우면 기초부터 실무까지 전문가되는 성남주민편 How to become an expert Sungnam citizen in 5 minutes
2019 | 실험 | 5'42" | 확장하는 카메라
- DIRECTOR_시리얼타임즈 chatterbox1@naver.com
- STAFF_감독/각본/프로듀서/편집/사운드 시리얼타임즈
마우스 클릭 한번, 키보드 두드림 한번으로 누군가의 기억과 공간들이 뒤틀리고 사라진다. 선별은 L [Selection]로, 이주는 V [Move]로, 아예 지워 없애고 싶을 땐 E [Erase]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거대한 공간을 한번에 날릴 수도 있을까? 식은 죽 먹기다. 철거 버튼은 Ctrl+T [Free Transform], 새끼손가락으로 컨트롤 버튼을 덧대는 수고만 해주면 된다. 도장 툴로 사람들의 몸에 낙인도 찍어보고 [Stamp], 브러쉬 [Brush]를 써서 불온자들의 얼굴을 빨갛게 칠도 해보며 익혔더니 배운 지 5분 만에 어느덧 포토샵의 기초를 다진 것 같다. 배움은 역시 실전이다.
과거 광주대단지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8·10 성남민권운동은 서울의 청계천, 영등포, 용산 일대의 판자촌에 거주하던 빈민들을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로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서울시의 일방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정조치에 반발하여 10만 명 이상의 시민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 영화는 러닝타임 전체를 포토샵의 화면 녹화본으로 진행했다. 흑백사진 속, 이름없는 누군가의 얼굴과 공간을 지우는 방법을 강의하는 건조한 목소리는 문자 그대로 ‘손짓 하나로 사람을 지워버릴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의 무심한 권력을 상기시킨다. 제25회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
DC2-4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 Graeae: A Stationed Idea
2020 | 실험 | 32'20" | 확장하는 카메라
- DIRECTOR_정여름 summerjeo@gmail.com
- STAFF_감독/각본 정여름 | 프로듀서/편집 안지환 | 음악 안예슬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GO’ 가 한때 세계를 강타했을 때 대부분의 누군가는 얼마나 빨리 또 많이 포켓몬을 잡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겠지만, 어떤 누군가는 이걸로 어떻게 영화를 찍어볼 수는 없을까? 를 고민했던 듯하다. 군사보안을 이유로 한국의 위성 지도에선 볼 수 없는, 용산 미군기지의 주요 시설과 풍경들을 ‘포켓몬 GO’ 를 통해서는 볼 수 있다는 유연하고 기발한 돌파력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의 특별함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 ‘포켓몬 GO’는 그저 시작이었을 뿐, 감독은 뉴스 자료화면과 AFKN의 영상 콘텐츠들, 옛날 미국 만화, 미군이 직접 찍어 올린 유튜브 영상과 브이로그 등 온갖 푸티지들을 자유자재로 섞고 조립하며 미군기지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공간 보고서를 완성한다. 현실의 세계를 감싸안는 가상의 시선, 오직 그 무수한 시선들만을 모아 완성한 이 영화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영화 제작법을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라 부를 만하다. 말하자면 ‘천리안’ 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제25회 대구단편영화제 프로그램팀장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