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소리
I'm Sori, I'm Sorry
한소리 | 2025 | 다큐멘터리 | 28분 10초 | 국내경쟁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내가 뱉어낸 소리는 엄마를 괴롭혔다.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소리의 폭력.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뻔뻔하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를 할퀸다.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웃으면 한다는 합리화를 하고,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내가 행한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다. 소리를 내뱉지 말자고 다짐한다.
- 프로그램 노트
2024년 12월 4일 밤, 계엄령 발표는 민주주의를 위협한 정치의 만행이기도 했지만 계엄이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일상 전반에서 발생하는 존재들, 부당한 억압과 구조의 하중 아래 짓눌린 이들의 존재감을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광장은 그런 알아차림이 일어나는 자리여야만 한다. 소리라는 이름의 여자를 딸로 둔 길혜와, 청각장애인 길혜를 엄마로 둔 소리는 계엄 이후 함께 영화를 만드는 일에 돌입한다. 소리는 길혜와 계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길혜가 그녀 자신의 존엄과 생존을 위해 순응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말이 무의식중에 어떤 권력 구조를 실어 날랐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엄마에게 소리는 감각과 내용의 차원에서 그녀를 이중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소리는 엄마의 관점에서 ‘소리’를 발견하기 위해 엄마에게 언어의 수단을, 카메라를 쥐여준다. 이것은 두 사람의 실천이자, 광장의 이야기다.
제26회 대구단편영화제 예심위원 김예솔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