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들의 아침 Morning of the Dead (이승주, 2018, 극, 29min, 국내경쟁)
이승주 감독의 <시체들의 아침>은 월간지 ’키노‘와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열광하고 한정판 DVD 수집에 열을 올렸던 1990~2000년대 영화광들에게는 공감할 요소들로 가득한 단편이다. DVD 하나를 구하기 위해 영화 커뮤니티의 장터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만나고, 남들은 모르는 영화에 대한 레퍼런스 지식을 가지고 서로 확인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당사자들이 아니고서는 느끼기 힘든 흥미로운 순간일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성재는 그 중에서 1990년대의 영화광 세대에 속한다. 감독으로서 실패한 뒤 회의감에 든 나머지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그는 수납장 안에 든 수백장의 DVD를 일괄 판매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오랜 영화광으로서의 자아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런 상황에 성재 앞에 등장하여 절판된 한정판 DVD에 광적으로 애착하는 소녀 민지는 과거의 자신을 복기하게 만든다. 해외구매사이트에서도 더 이상 비싼 가격에 구하기 힘든 영화를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우려에 재생 버튼을 눌러 한 번 더 영화를 보는 민지의 태도는 비디오가 없던 시절 극장에서 한번 내려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없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씩 재 관람해서 머리 속에 저장했다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결사적 이야기를 90년대 영화광 세대라며 누구라도 알고 있을테니까.
영화가 끝난 뒤 많은 영화광들이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성재의 영화감독으로서의 패배는 실제 영화계 종사자들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가 오랜 시간 모은 DVD를 파는 행위는 영화를 취미로 둔 사람들조차도 어려운 경제적 사정에 빠지게 되면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이 옳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체들의 아침>은 덕질을 하는 이들이 한 번씩은 겪을 정체성 고민의 순간을 영화로 표현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순간에 영화광으로서의 삶을 포기할지, 아니면 계속 해 나갈지에 대한 선택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성재는 민지가 가지고 싶었던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4디스크 짜리 한정판 DVD를 검은 봉투에 싸서 그냥 건넨다.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자기 세대가 지녔던 유산을 다시 인계하는 순간, 과연 성재는 영화광으로서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이석범
시체들의 아침 Morning of the Dead (이승주, 2018, 극, 29min, 국내경쟁)
이승주 감독의 <시체들의 아침>은 월간지 ’키노‘와 ’정은임의 FM영화음악‘에 열광하고 한정판 DVD 수집에 열을 올렸던 1990~2000년대 영화광들에게는 공감할 요소들로 가득한 단편이다. DVD 하나를 구하기 위해 영화 커뮤니티의 장터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만나고, 남들은 모르는 영화에 대한 레퍼런스 지식을 가지고 서로 확인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당사자들이 아니고서는 느끼기 힘든 흥미로운 순간일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성재는 그 중에서 1990년대의 영화광 세대에 속한다. 감독으로서 실패한 뒤 회의감에 든 나머지 모든 것을 정리하려는 그는 수납장 안에 든 수백장의 DVD를 일괄 판매할 계획을 세움으로써 오랜 영화광으로서의 자아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런 상황에 성재 앞에 등장하여 절판된 한정판 DVD에 광적으로 애착하는 소녀 민지는 과거의 자신을 복기하게 만든다. 해외구매사이트에서도 더 이상 비싼 가격에 구하기 힘든 영화를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우려에 재생 버튼을 눌러 한 번 더 영화를 보는 민지의 태도는 비디오가 없던 시절 극장에서 한번 내려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없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몇 번씩 재 관람해서 머리 속에 저장했다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결사적 이야기를 90년대 영화광 세대라며 누구라도 알고 있을테니까.
영화가 끝난 뒤 많은 영화광들이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할지 모르겠다. 주인공 성재의 영화감독으로서의 패배는 실제 영화계 종사자들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가 오랜 시간 모은 DVD를 파는 행위는 영화를 취미로 둔 사람들조차도 어려운 경제적 사정에 빠지게 되면 ’내가 이 짓을 하는 것이 옳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체들의 아침>은 덕질을 하는 이들이 한 번씩은 겪을 정체성 고민의 순간을 영화로 표현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순간에 영화광으로서의 삶을 포기할지, 아니면 계속 해 나갈지에 대한 선택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성재는 민지가 가지고 싶었던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4디스크 짜리 한정판 DVD를 검은 봉투에 싸서 그냥 건넨다.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자기 세대가 지녔던 유산을 다시 인계하는 순간, 과연 성재는 영화광으로서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이석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