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간의 영화축제,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가 공식 폐막하였습니다.
국내경쟁 36편, 애플시네마 10편, 총 46편의 경쟁작들과 26편의 초청작까지.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내경쟁]
대상 <파지> 고광준 감독
우수상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 한지원 감독
[애플시네마]
대상 <겨울캠프> 장주선 감독
우수상 <처음> 진여온 감독
[관객상]
<아무 잘못 없는> 박찬우 감독
[애플피칭 제작지원]
<자화상> 김상범 감독
[지역영화 배리어프리 제작지원작]
<소녀탐정 양수린> 김선빈 감독
<아무 잘못 없는> 박찬우 감독
<OK목장의 결투> 변석호 감독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평]
영화 창작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 창작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름의 대답을 마련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언제(제작 시기), 어디서(촬영 장소), 왜(기획 의도)라는 물음에 대한 창작자의 결정은 스크린 상에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을 소재나 제재로 삼고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초래한 결과는 스크린 상에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버립니다. 즉 스크린을 대면하고 있는 관객에게 무엇보다도 영화는 ‘무엇을’과 ‘어떻게’에 대한 창조적 결단의 결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특히 단편영화는 그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아니 오히려 바로 그러한 제약 덕택에, 소재나 제재를 서사적으로 구성하는 것에 앞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운용을 개성적 표현의 극치로 끌어올리는데 관심을 둔 창작자들에게 최적의 포맷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각종 지원 제도와 영화 학교의 양성 시스템이 요구하는 시나리오 중심적 사고, 영화를 비롯한 여러 창조적 수단을 ‘콘텐츠’로 포괄해 이해하는 흐름, 안이한 저널리즘과 온라인 평점 사이트들을 통해 전면화된 ‘공감’과 ‘이해’를 우선시하는 파국적 대중주의, 그리고 이에 영합하는 국내 영화제들의 단편영화 프로그래밍 경향 등은, 점점 단편영화의 창작자들을 ‘어떻게’보다는 ‘무엇을’에만 몰두하게끔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로써 한국의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창조적 가능성의 포맷이 아니라 장편영화의 어느 부분을 잘라낸 ‘단면영화’로만 좁게 수렴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대구단편영화제 경쟁작들을 보면서 저희는 단편영화 포맷으로만 가능한 방식으로 ‘어떻게’라는 물음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키는 작품들에 주목해보려 했습니다.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지역/로컬 섹션은 영화제 개최 지역의 창작자들을 의무적으로 배려한 ‘보호적’ 성격의 섹션으로 취급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대구 지역의 젊은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을 모은 ‘애플시네마’ 경쟁부문에는 일반 경쟁부문의 작품들과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영화제의 규정과 방침을 존중하면서 어렵게 두 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먼저, 애플시네마 부문 우수상 수상작은 진여온 감독의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대구로 학교를 옮긴 주인공의 이사 첫날을 소재로 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단출합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이사 첫날 만나는 사람들과 들르는 장소들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게 됩니다. 무언가 일어날 듯도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고, 어떤 관계나 상황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별 탈 없이 마무리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하루가 끝나기까지, 우리는 영화를 이루는 매 쇼트가 지극히 불확정적인 미묘함을 간직하고 있는 데서 오는 저주파의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애플시네마 부문 대상 수상작은 심사위원 세 명의 만장일치로 장주선 감독의 <겨울캠프>로 선정하였습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을 홀로 돌보면서 영양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소재만 두고 보면 ‘무엇을’에 집중하는 단편영화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엇을’과 ‘어떻게’가 하나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근사한 예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관객을 특정한 인물에게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하기보다는 거듭 다른 인물들의 시점과 입장을 환기시키며 우리의 동일시를 교란하는 성숙한 태도가 무척이나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 경쟁 부문의 수상작은 장시간 토론 끝에 결정되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데는 언제나 이중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저희는 두 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두 편 모두 단편영화의 시간적 제약을 오히려 창조적 구속조건으로 활용하면서 ‘어떻게’라는 물음에 천착한 작품입니다.
먼저, 국내 경쟁 부문 우수상 수상작은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입니다. 가족이라는 굴레, 자신을 옭아매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어딘가 다른 곳으로, 외국으로 가고자 하는 주인공이란 그 자체로는 오늘날 한국 단편영화에서 낯설지 않은 소재입니다. 그 결과, 이미지의 변환이 자유로운 애니메이션적 표현을 대담하게 구사하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은 ‘어떻게’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하지만 이 충돌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현실의 구속을 상징하는 아버지와 마법적 몽상을 상징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표류하는 주인공은, 실사적 소재와 애니메이션적 표현, ‘무엇을’과 ‘어떻게’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생생한 형상을 모색하는 이 작품 자체와 닮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경쟁 부문 대상은 고광준 감독의 <파지>입니다. 올해 경쟁 부문의 작품들 가운데 단편영화 포맷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성립할 수 없을 듯한 착상에서 출발한 영화라면 단연 이 영화일 것입니다. 심리보다는 몸짓과 행동으로 인지되는 인물들, 시선과 미장센을 통해 단서들을 제시하되 결코 일부러 강조하거나 반복하는 법은 없는 대담한 연출, 인물들과 사물들 그리고 공간이 맺는 관계를 경제적으로 담아낸 광각 촬영 등이 비범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공감을 구하려 들기보다는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고 본다는 일 자체의 쾌락에 끌리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종종 간과되기 쉽습니다. 영화의 결말부에 고물상 주인에게서 여인의 손수레로 무심한 듯 던져지는 한 사소한 사물처럼 말입니다. 이 영화의 많은 몸짓들과 시선들과 사물들처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그것이 관객에게 주는 영화적 의미, 아니 쾌락을 감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작년 여름에 만들어진 영화가 그동안 어떤 집요한 배제와 탈락의 과정을 거친 끝에 이제야, 올해 8월이 되어서야 정동진독립영화제와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비로소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작품을 마침내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대구단편영화제 관계자 분들과 예심위원 분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영화평론가 유운성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피칭 심사평]
제24회 DIFF 애플피칭 2차 면접에서 만난 <셋업>, <김미옥>,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 <자화상>, <상철이>는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면접을 진행하며 무조건 영화를 찍어 내겠다는 연출자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큰 예산 계획에 비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꼭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습니다. 본 심사위원들은 시나리오 독창성과 완성도, 제작 계획과 예산 편성의 합리성을 작품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면접 점수를 채점하고 신중하게 토론한 결과, 최종 선정작은 <자화상>입니다.
‘무속신앙’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주제로 삼고 있는 <자화상>은 이제껏 지역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입니다.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는 관습적인 태도 대신에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자화상>만의 독특하고 불온한 기운을 만들어 내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연출자가 오랫동안 고심해 온 흔적들이 보였고 어떻게든 영화를 찍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 심사위원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만 시나리오가 불필요하게 길고 제작 계획의 준비가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지점을 잘 보완해서 개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한 <셋업>, <김미옥>,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 <상철이> 제작진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머지않아 멋진 모습으로 완성되길 바랍니다.
추가로 면접을 진행하며 심사위원들이 느낀 공통적인 생각과 불편한 고민을 남깁니다. 지역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 창작자가 나타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대부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집중하지 않고 다소 장황하게 내용을 늘어놓는 지점은 아쉬웠습니다. 단편영화의 형식에 걸맞게 함축적이고 간결한 영화적인 순간을 구현하는 것에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불필요한 예산은 줄고 영화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면접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심사위원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지점은 상당수의 연출자가 본인의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당연하게 사비를 쓸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영화 제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우, 스태프뿐만 아니라 연출자 또한 합리적인 인건비를 받는 풍토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해 지원사업 주체의 깊이 있는 고민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연출자 또한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예술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길 바라봅니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영화감독 오정민
6일 간의 영화축제,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가 공식 폐막하였습니다.
국내경쟁 36편, 애플시네마 10편, 총 46편의 경쟁작들과 26편의 초청작까지.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내경쟁]
대상 <파지> 고광준 감독
우수상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 한지원 감독
[애플시네마]
대상 <겨울캠프> 장주선 감독
우수상 <처음> 진여온 감독
[관객상]
<아무 잘못 없는> 박찬우 감독
[애플피칭 제작지원]
<자화상> 김상범 감독
[지역영화 배리어프리 제작지원작]
<소녀탐정 양수린> 김선빈 감독
<아무 잘못 없는> 박찬우 감독
<OK목장의 결투> 변석호 감독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평]
영화 창작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 창작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름의 대답을 마련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언제(제작 시기), 어디서(촬영 장소), 왜(기획 의도)라는 물음에 대한 창작자의 결정은 스크린 상에 거의 드러나지 않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을 소재나 제재로 삼고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초래한 결과는 스크린 상에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버립니다. 즉 스크린을 대면하고 있는 관객에게 무엇보다도 영화는 ‘무엇을’과 ‘어떻게’에 대한 창조적 결단의 결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특히 단편영화는 그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아니 오히려 바로 그러한 제약 덕택에, 소재나 제재를 서사적으로 구성하는 것에 앞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운용을 개성적 표현의 극치로 끌어올리는데 관심을 둔 창작자들에게 최적의 포맷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각종 지원 제도와 영화 학교의 양성 시스템이 요구하는 시나리오 중심적 사고, 영화를 비롯한 여러 창조적 수단을 ‘콘텐츠’로 포괄해 이해하는 흐름, 안이한 저널리즘과 온라인 평점 사이트들을 통해 전면화된 ‘공감’과 ‘이해’를 우선시하는 파국적 대중주의, 그리고 이에 영합하는 국내 영화제들의 단편영화 프로그래밍 경향 등은, 점점 단편영화의 창작자들을 ‘어떻게’보다는 ‘무엇을’에만 몰두하게끔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로써 한국의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창조적 가능성의 포맷이 아니라 장편영화의 어느 부분을 잘라낸 ‘단면영화’로만 좁게 수렴되어가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대구단편영화제 경쟁작들을 보면서 저희는 단편영화 포맷으로만 가능한 방식으로 ‘어떻게’라는 물음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키는 작품들에 주목해보려 했습니다.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지역/로컬 섹션은 영화제 개최 지역의 창작자들을 의무적으로 배려한 ‘보호적’ 성격의 섹션으로 취급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대구 지역의 젊은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을 모은 ‘애플시네마’ 경쟁부문에는 일반 경쟁부문의 작품들과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영화제의 규정과 방침을 존중하면서 어렵게 두 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먼저, 애플시네마 부문 우수상 수상작은 진여온 감독의 <처음>입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대구로 학교를 옮긴 주인공의 이사 첫날을 소재로 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단출합니다. 우리는 주인공이 이사 첫날 만나는 사람들과 들르는 장소들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게 됩니다. 무언가 일어날 듯도 하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고, 어떤 관계나 상황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도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별 탈 없이 마무리된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하루가 끝나기까지, 우리는 영화를 이루는 매 쇼트가 지극히 불확정적인 미묘함을 간직하고 있는 데서 오는 저주파의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애플시네마 부문 대상 수상작은 심사위원 세 명의 만장일치로 장주선 감독의 <겨울캠프>로 선정하였습니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을 홀로 돌보면서 영양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소재만 두고 보면 ‘무엇을’에 집중하는 단편영화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엇을’과 ‘어떻게’가 하나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근사한 예라 하겠습니다. 더불어, 관객을 특정한 인물에게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하기보다는 거듭 다른 인물들의 시점과 입장을 환기시키며 우리의 동일시를 교란하는 성숙한 태도가 무척이나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 경쟁 부문의 수상작은 장시간 토론 끝에 결정되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는 데는 언제나 이중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저희는 두 편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두 편 모두 단편영화의 시간적 제약을 오히려 창조적 구속조건으로 활용하면서 ‘어떻게’라는 물음에 천착한 작품입니다.
먼저, 국내 경쟁 부문 우수상 수상작은 한지원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법이 돌아오는 날의 바다>입니다. 가족이라는 굴레, 자신을 옭아매는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어딘가 다른 곳으로, 외국으로 가고자 하는 주인공이란 그 자체로는 오늘날 한국 단편영화에서 낯설지 않은 소재입니다. 그 결과, 이미지의 변환이 자유로운 애니메이션적 표현을 대담하게 구사하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은 ‘어떻게’와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하지만 이 충돌 자체가 이 작품의 매력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현실의 구속을 상징하는 아버지와 마법적 몽상을 상징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표류하는 주인공은, 실사적 소재와 애니메이션적 표현, ‘무엇을’과 ‘어떻게’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생생한 형상을 모색하는 이 작품 자체와 닮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경쟁 부문 대상은 고광준 감독의 <파지>입니다. 올해 경쟁 부문의 작품들 가운데 단편영화 포맷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성립할 수 없을 듯한 착상에서 출발한 영화라면 단연 이 영화일 것입니다. 심리보다는 몸짓과 행동으로 인지되는 인물들, 시선과 미장센을 통해 단서들을 제시하되 결코 일부러 강조하거나 반복하는 법은 없는 대담한 연출, 인물들과 사물들 그리고 공간이 맺는 관계를 경제적으로 담아낸 광각 촬영 등이 비범한 작품입니다. 이것은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공감을 구하려 들기보다는 무엇보다 영화를 만들고 본다는 일 자체의 쾌락에 끌리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종종 간과되기 쉽습니다. 영화의 결말부에 고물상 주인에게서 여인의 손수레로 무심한 듯 던져지는 한 사소한 사물처럼 말입니다. 이 영화의 많은 몸짓들과 시선들과 사물들처럼,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그것이 관객에게 주는 영화적 의미, 아니 쾌락을 감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작년 여름에 만들어진 영화가 그동안 어떤 집요한 배제와 탈락의 과정을 거친 끝에 이제야, 올해 8월이 되어서야 정동진독립영화제와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비로소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작품을 마침내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준 대구단편영화제 관계자 분들과 예심위원 분들에게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영화평론가 유운성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피칭 심사평]
제24회 DIFF 애플피칭 2차 면접에서 만난 <셋업>, <김미옥>,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 <자화상>, <상철이>는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작품들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면접을 진행하며 무조건 영화를 찍어 내겠다는 연출자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큰 예산 계획에 비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꼭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습니다. 본 심사위원들은 시나리오 독창성과 완성도, 제작 계획과 예산 편성의 합리성을 작품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면접 점수를 채점하고 신중하게 토론한 결과, 최종 선정작은 <자화상>입니다.
‘무속신앙’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주제로 삼고 있는 <자화상>은 이제껏 지역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입니다.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는 관습적인 태도 대신에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로 <자화상>만의 독특하고 불온한 기운을 만들어 내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연출자가 오랫동안 고심해 온 흔적들이 보였고 어떻게든 영화를 찍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 심사위원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만 시나리오가 불필요하게 길고 제작 계획의 준비가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부족한 지점을 잘 보완해서 개성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한 <셋업>, <김미옥>, <비록 우리가 유령일지라도>, <상철이> 제작진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머지않아 멋진 모습으로 완성되길 바랍니다.
추가로 면접을 진행하며 심사위원들이 느낀 공통적인 생각과 불편한 고민을 남깁니다. 지역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 창작자가 나타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대부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 집중하지 않고 다소 장황하게 내용을 늘어놓는 지점은 아쉬웠습니다. 단편영화의 형식에 걸맞게 함축적이고 간결한 영화적인 순간을 구현하는 것에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불필요한 예산은 줄고 영화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면접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심사위원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지점은 상당수의 연출자가 본인의 인건비를 책정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당연하게 사비를 쓸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저예산 독립영화지만 영화 제작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우, 스태프뿐만 아니라 연출자 또한 합리적인 인건비를 받는 풍토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해 지원사업 주체의 깊이 있는 고민과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연출자 또한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예술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길 바라봅니다.
심사위원을 대표하여 영화감독 오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