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수다 한 잔


인터뷰 <관찰과 기억> 이솜이 감독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다큐멘터리 과정에 재학 중인 이솜이라고 한다.



Q. ⟨관찰과 기억⟩(2018)은 어떻게 찍게 된 영화인지 궁금하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특정 사건이 상기된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을 하든 전후관계라는 게 확실하게 떨어지진 않듯이 말이다. 사실 이 작품은 내 기억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픽션이기도 하다. 때문에 내가 드러나서 진행되기보다는 이 상황과 가해자의 분위기나 이미지가 픽션적으로 잘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픽션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사건에 치중하게 된다. 더 재미있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좀 멀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걸 바라진 않았다. 그리고 사건이라는 것이 복기하면 할수록 아주 확실하고 선명해져서 한 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파편적으로 ‘이게 맞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나?’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생각이 파편적으로 흩어지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어떤 재미를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나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그 기억이 당시 피해자였던 나나 개인의 어떤 상황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계급적인 일,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순간, 그런 분위기까지 넓게 확장하자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Q. 누군가에겐 행복한 기억이 누군가에겐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메시지가 크게 다가왔다. 그 메시지의 어떤 힘으로 영화까지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영화에 나오는 APIS라는 국제학교는 당시 나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였다. 그 외국인 학교는 유일하게 잔디가 깔려있는 학교였다. 거길 지나다닐 때마다 어떤 학교인지 늘 궁금해 했다. 그러다가 문방구에서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본 적이 있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것처럼 서슴없이 영어로 말을 하더라. 학교를 알아보던 스무 살 즈음에 학교 아르바이트 공고가 떴다. 그 학교가 궁금하기도 했고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그곳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자본주의적인 시선, 계급적인 시선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본 등록금 2천만원에 1학기 과정을 듣기 위해선 2천만원을 또 내야하는 학교였다. 이 학교가 갖고 있는 힘이 아이들에게 전이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아이들이 하는 영어를 알아듣고는 영어로 대답한 적이 있다. “너 사탕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는 식으로 말했더니 아이가 너무 놀라더라. ‘저 선생이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그런 눈치였다. 원래 그 버스보조교사라는 직업이 영어를 못하고 나이가 있는 40~50대의 여성분들이 주로 해오던 일인데, 학생들 딴에는 자기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의 배후에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을 때 저변에 깔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외면이 크다고 생각했다. 소풍을 갈 때 자기 행복에 취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시에 그 순간 그 장소에는 좌절에 빠져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 그곳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실제로 죽는 사람도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상황들이 있는데 우린 이걸 너무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프닝에 썼던 사진도 그런 계급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썼다.



Q. 영화에 나오는 내레이션은 설명적인 산문체보다는 운문체에 가까운 말들로 들리는 것들이 있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내 상황에 대한 모든 걸 설명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설명하게 되면 나라는 캐릭터 에 집중하는 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운문적인 내레이션을 통해 기시감을 주길 바랐고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레이션을 설명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Q. “살면서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 처럼 배어나왔다.”라는 말을 영화에서도 한 번 하고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도 다시 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크레딧은 김애란 작가의 ⟨풍경의 쓸모⟩(⟪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라는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어떤 남자 정교수와 남자강사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는데, 정교수가 강사에게 사고를 덮어씌워도 되냐는 부탁을 하게 되고 강사는 기꺼이 들어주지만 결국 해고통고를 받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다. 그 소설 자체가 성폭력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계급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작품에서도 각인시켜주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영화 속 탱탱볼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탱탱볼을 튀기는 모습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서 불안하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상당히 공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 혹은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SIKETOMI’ 라는 인물이 한 번은 실제로 버스 안에 공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자기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모든 걸 자기 마음대로 했다. APIS 규정상 아이에게 손을 대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냥 그걸 보고만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걸 수동적으로 관찰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을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 탱탱볼 장면과 소리를 많이 넣게 됐다.



Q. 영어로 표현된 자막이나 대사가 몇 개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번역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있는가?

정확히 의도된 것이다. 그걸 완전히 직역하게 되면 타인에 대해 무시하는 듯 흘러가는 말이나 태도, 혹은 외모 비하 발언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분위기를 자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곧바로 직역이 되지는 않는 순간들이 좀 있었다. 사실 그 대사는 제가 쓴 것이고 그 분위기를 더 살리기 위해서는 영어든 한국어든 자막이 없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영화 제목은 ⟨관찰과 기억⟩인데 왜 영화 속 제목은 ⟨APIS 관찰과 기억⟩으로 쓰였나?

14년도에 만들었을 때는 ⟨APIS 관찰과 기억⟩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오프닝을 넣으면서 APIS를 넣는 것보다 그걸 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Q. 오프닝에 나오는 인터뷰에 대역을 쓰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장면은 가장 최근에 찍은 것이다. 그 장면만 17년도에 찍고 나머지는 14년도에 찍은 것인데, 14년도에 그걸 만들고 나서 잘 안됐다. 많은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면 ‘설명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하거나 ‘내레이션이 너무 시 같다’거나 혹은 ‘상황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찍는 사람들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그건 제가 성추행이라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너무 소심하기도 했고. 내가 더 솔직해졌어야 했는데 그걸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화를 찍게 됐다. 그걸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게 가장 고쳐야하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필요한데, 그 말은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내가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뒤늦게나마 나의 이야기를 오프닝으로 쓰게 되었다. (이야기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Q. 그 오프닝 인터뷰 내내 주춤주춤하는 모습에서 무언가 말하기 힘든 상황이 있었겠다고 생각하면서 봤다. 주춤주춤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나?

근데 사실 나는 그걸 조금 후회한다. 망설인다는 느낌보다는 8년이라는 너무 긴 시간이 지 났는데도 이걸 하는 게 힘들고 귀찮은 거지, 정신적으로 엄청 힘든 것은 아니다. 여성영화제에서 어떤 분이 프로그램 노트에서 쓴 문구를 봤는데 “마치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카메라를 외면하는 듯이 이야기했다.” 라는 말을 보면서 사실 이건 타인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위치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피해자로서의 캐릭터를 부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걸 좀 후회한다. 아쉽다. 제 영화는 사실 실험영화이고 모든 것을 기승전결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상징적인 힘이나 어떤 분위기를 통해 이끌어 나가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오프닝에서 피해자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영화에서 가해자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는 결국 피해자에게 가는 것이다. ‘아직 멀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Q. 추후 제작 계획은?

현재 ‘군대 트라우마’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것이 있다. 지금껏 너무 젠더이분법적으로 남과 여를 나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결국엔 그 모든 것이 계급과 관련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에 대해 좀 더 내밀하게 찍고 싶다.




취재/글 박마리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