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일 동성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하늘 감독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짧은 질문과 짧은 답이 오고 갔다. 하지만 몇몇 질문에서 엄 감독은 눈을 감고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 잠깐의 시간 후에 나온 이야기들은 굉장히 섬세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 달라
칠곡에서 태어나서 중학생 때 대구로 왔다. 지금은 세 번째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2018)를 찍고 대구단편영화제를 방문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구‧경북 특유의 투박스러운 사투리와 지하철 3호선, 동성로 등 여러 지역적 소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역시나 본인이 대구 출신이었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가?
중학생 때 〈엽기적인 그녀〉(2001)를 봤던 게 계기가 됐다. ‘나도 저런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닥치는 대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봤다. 한 해에 100~200편 가까이 본 것 같다. 그 후 영화에 관한 공부를 하고 스태프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번에 출품한 영 화〈찾을 수 없습니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대구에서 칠곡으로 전학을 온 ‘지환’과 ‘은아’가 다시 대구로 놀러 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
‘미안하고도 그리운 대구’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사람들은 학창시절을 되돌아볼 때 ‘너무 즐거웠다’라거나 ‘추억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2003년에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런 대답을 꺼내기는 조금 어렵다. 세월이 흘러 잊고 지낼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미안한 감정이 드는 시간이었다. 영화는 당시의 큰 사건을 잊지 말자는 주제를 갖는다. 또한 당시를 보낸 대구인들, 특히 그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인들에게 자리잡은 ‘트라우마’라는 기묘한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영화 제목에 담긴 의미가 있는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지환이 은아가 보낸 메시지를 뒤늦 게 발견하지만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뜨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속상했다.
제목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장면 그대로 은아가 남긴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그 시절의 대구를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나오는 추억의 물건들이 있다. 아이리버 MP3, CD플레이어, 두꺼운 모니터 등.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하다.
중고나라에 다 있다. 모니터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모니터 외에 낡은 본체 같은 것은 내가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다.
특히 영화 엔딩에 나오는 곡이 좋았다. 왜 이상은인가?
2003년에 히트했던 노래들 중 유니크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게 이상은 씨의 〈비밀의 화원〉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내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가수가 이상은이었다. 당시 라디오에서 는 이상은 씨 곡이 자주 흘러나왔다.
전작인 〈부끄럽지만〉(2016)에서도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이번 영화도 노래를 매개로 두 친구가 연결되는 설정인 만큼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감독의 스타일인가?
시나리오 쓸 때부터 노래를 중시한다. 그래서 음악감독님이 주신 음악을 여섯 번 거절한 적도 있다(웃음) 이번에도 같은 음악감독님이 작업을 해 주셨는데, 지난 번 경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시더라.
영화를 함께 찍은 스태프, 배우들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부탁한다. 그리고 영화 작업 중에 발생한 해프닝이 있다면?
대구에 연이 없어서 서울에서 스태프가 다 내려와서 작업을 했다. 아역배우를 구하기 위해 대구의 연기학원들에 연락했지만 비협조적이었다. 단편영화고 독립영화라서 아무래도 힘든 부분이었다. 배우들도 서울에서 왔지만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했다.
영화 작업 중에는 늦장마가 왔다. 하지만 시나리오에는 비 오는 장면이 없었다. 사실상 하루의 절반을 날려가면서 촬영했다. 스태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장소는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
영화의 주 배경, 특히 과거 회상 장면은 칠곡에서 작업을 했나? 개인적으론 도시가 아닌 시골이 가진 고유의 색감이 잘 표현됐다고 느꼈다.
시나리오상 배경은 칠곡이지만, 칠곡과 구미를 왔다 갔다 하며 찍었다. 칠곡도 이젠 개발이 많이 되었다.
여자주인공의 이민 소식이 들리고 그 뒤를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을 연출한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두 아역배우의 섬세한 연기 장면도 부분부분 엿보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특히 애정을 쏟은 장면이 있다면?
개인적인 이유로 애정이 가는 씬이 있다. ‘첫 영화 때 해보고 싶었는데 못 했다’는 이유이긴 하지만. 맨 처음 대구에 도착해서 롯데백화점 앞에 내렸을 때의 군중씬이다. 군중들이 다 스태프나 엑스트라인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애정을 많이 쏟았다.
영화는 단순히 짝사랑과의 이별에 대한 아픔만을 말하고 있진 않다. 대구가 가진 상처들을 표현하기 위해 지하철이 등장한다거나 주인공들이 그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 등을 장치로 설정했다. 이것들이 과하지 않게 잘 버무려져서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나는 두 배우가 대구에 도착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은아랑 지환이 대구 에서 같이 노는 모습들이라든지, 지환이 지하상가에 내려가서 엄마를 그리는 장면이라든지.아쉬움이 좀 남는다.
영화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감독님이 영화를 찍게 만드는 원동력은?
역시나 시간과 돈이 가장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찍은 영화를 다른 사람과 같이 보는 걸 좋아 하기 때문에 계속 찍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영화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는가?
멜로나 코미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어쨌든 계속 영화를 찍는 게 목표다.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아팠던 일들을 잊지 말고 봐주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문득 지환과 은아가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감독은 오래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을 때, 그 자체로 치유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취재/글 김보현
※인터뷰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일 동성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하늘 감독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짧은 질문과 짧은 답이 오고 갔다. 하지만 몇몇 질문에서 엄 감독은 눈을 감고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 잠깐의 시간 후에 나온 이야기들은 굉장히 섬세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 달라
칠곡에서 태어나서 중학생 때 대구로 왔다. 지금은 세 번째 영화, 〈찾을 수 없습니다〉(2018)를 찍고 대구단편영화제를 방문하게 되었다.
영화에 대구‧경북 특유의 투박스러운 사투리와 지하철 3호선, 동성로 등 여러 지역적 소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역시나 본인이 대구 출신이었다.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가?
중학생 때 〈엽기적인 그녀〉(2001)를 봤던 게 계기가 됐다. ‘나도 저런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닥치는 대로 개봉하는 영화들을 봤다. 한 해에 100~200편 가까이 본 것 같다. 그 후 영화에 관한 공부를 하고 스태프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번에 출품한 영 화〈찾을 수 없습니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대구에서 칠곡으로 전학을 온 ‘지환’과 ‘은아’가 다시 대구로 놀러 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의 주제는 무엇인가?
‘미안하고도 그리운 대구’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사람들은 학창시절을 되돌아볼 때 ‘너무 즐거웠다’라거나 ‘추억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2003년에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에게 이런 대답을 꺼내기는 조금 어렵다. 세월이 흘러 잊고 지낼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건들이 있었다. 다시 떠올리기조차 미안한 감정이 드는 시간이었다. 영화는 당시의 큰 사건을 잊지 말자는 주제를 갖는다. 또한 당시를 보낸 대구인들, 특히 그 시절에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인들에게 자리잡은 ‘트라우마’라는 기묘한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영화 제목에 담긴 의미가 있는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지환이 은아가 보낸 메시지를 뒤늦 게 발견하지만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뜨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너무 속상했다.
제목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장면 그대로 은아가 남긴 메시지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그 시절의 대구를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나오는 추억의 물건들이 있다. 아이리버 MP3, CD플레이어, 두꺼운 모니터 등.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하다.
중고나라에 다 있다. 모니터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모니터 외에 낡은 본체 같은 것은 내가 보관하고 있던 물건이다.
특히 영화 엔딩에 나오는 곡이 좋았다. 왜 이상은인가?
2003년에 히트했던 노래들 중 유니크한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게 이상은 씨의 〈비밀의 화원〉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내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가수가 이상은이었다. 당시 라디오에서 는 이상은 씨 곡이 자주 흘러나왔다.
전작인 〈부끄럽지만〉(2016)에서도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이번 영화도 노래를 매개로 두 친구가 연결되는 설정인 만큼 음악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데, 감독의 스타일인가?
시나리오 쓸 때부터 노래를 중시한다. 그래서 음악감독님이 주신 음악을 여섯 번 거절한 적도 있다(웃음) 이번에도 같은 음악감독님이 작업을 해 주셨는데, 지난 번 경험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시더라.
영화를 함께 찍은 스태프, 배우들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부탁한다. 그리고 영화 작업 중에 발생한 해프닝이 있다면?
대구에 연이 없어서 서울에서 스태프가 다 내려와서 작업을 했다. 아역배우를 구하기 위해 대구의 연기학원들에 연락했지만 비협조적이었다. 단편영화고 독립영화라서 아무래도 힘든 부분이었다. 배우들도 서울에서 왔지만 사투리를 열심히 연습했다.
영화 작업 중에는 늦장마가 왔다. 하지만 시나리오에는 비 오는 장면이 없었다. 사실상 하루의 절반을 날려가면서 촬영했다. 스태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장소는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다.
영화의 주 배경, 특히 과거 회상 장면은 칠곡에서 작업을 했나? 개인적으론 도시가 아닌 시골이 가진 고유의 색감이 잘 표현됐다고 느꼈다.
시나리오상 배경은 칠곡이지만, 칠곡과 구미를 왔다 갔다 하며 찍었다. 칠곡도 이젠 개발이 많이 되었다.
여자주인공의 이민 소식이 들리고 그 뒤를 무심히 지나가는 시민들을 연출한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다. 두 아역배우의 섬세한 연기 장면도 부분부분 엿보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특히 애정을 쏟은 장면이 있다면?
개인적인 이유로 애정이 가는 씬이 있다. ‘첫 영화 때 해보고 싶었는데 못 했다’는 이유이긴 하지만. 맨 처음 대구에 도착해서 롯데백화점 앞에 내렸을 때의 군중씬이다. 군중들이 다 스태프나 엑스트라인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애정을 많이 쏟았다.
영화는 단순히 짝사랑과의 이별에 대한 아픔만을 말하고 있진 않다. 대구가 가진 상처들을 표현하기 위해 지하철이 등장한다거나 주인공들이 그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 등을 장치로 설정했다. 이것들이 과하지 않게 잘 버무려져서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나는 두 배우가 대구에 도착하고 난 다음의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은아랑 지환이 대구 에서 같이 노는 모습들이라든지, 지환이 지하상가에 내려가서 엄마를 그리는 장면이라든지.아쉬움이 좀 남는다.
영화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감독님이 영화를 찍게 만드는 원동력은?
역시나 시간과 돈이 가장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찍은 영화를 다른 사람과 같이 보는 걸 좋아 하기 때문에 계속 찍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영화작업에 대한 계획이 있는가?
멜로나 코미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어쨌든 계속 영화를 찍는 게 목표다.
영화를 보실 분들에게 한마디를 남긴다면?
아팠던 일들을 잊지 말고 봐주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문득 지환과 은아가 다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감독은 오래전 기억이 문득 떠올랐을 때, 그 자체로 치유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취재/글 김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