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동네에 이빨처럼 뿌리내린 아파트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콘크리트의 불안’은 그 회색빛 콘크리트 이빨을 응시하며 내 안에 이빨처럼 콕콕 박힌 옛 기억들을 호명하는 영화다. 호명의 매 순간마다 첫 이를 뽑을 때와 같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감각들이 스스로를 성큼 드러낸다.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정릉동에 머무르며 스카이아파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장윤미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Q.‘콘크리트의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A. 영화에 등장하는 스카이아파트는 한 10년 전 제가 인권단체 자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곳이다. 그 때부터 주민들은 건물의 위험성에 대해 항의하며 주민권, 생존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즈음, 우연히 스카이아파트 관련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 10년 전부터 사람들이 투쟁해왔는데, 아직도 이 아파트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걸 계기로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예전에는 스카이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다면, 기사를 본 후로는 건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물 자체의 물질성에 점차 집중하면서 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Q. 영화 속 내레이션이 전달하는 말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A. 스카이아파트라는 공간에 이끌려서 그곳에 갔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저는 그곳에서 저의 어릴 적 추억을 보았다. 제가 어릴 때 대구에 살았는데, 그 당시엔 지금과 달리 3~5층짜리 작은 아파트가 많았다. 그 땐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추억도 있고, 복작복작 사람 사는 느낌이 있었는데, 최근 대구에 간 김에 그 아파트에 다시 가보니 놀이터도 벤치도 없어지고 허전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스카이아파트를 보며 제가 한때 살았던, 지금은 쓸쓸해진 그 아파트를 떠올렸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 그 글을 제가 찍은 영상과 연결하게 되었다. 그 글은 한 7~8년 전쯤에 쓴 것인데, 완전히 실화만을 다룬 글은 아니다. 제게는 어릴 적 젖니가 빠질 때의 느낌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문득 떠오른 그 느낌을 바탕으로 내 어릴 때 캐릭터를 생각해서 쓰게 된 반 자전적인 글이다. 저에게는 그 글에 나타난, 이빨이 흔들릴 때 그리고 빠질 때의 느낌과, 스카이아파트가 처한 운명 사이에 유사성이 보였기 때문에 그 글을 내레이션으로 넣은 것이다. 원래는 긴 글이었지만 영화에 넣기 위해 많이 자르고 줄이고, 어울리는 말들만 편집을 했다.
Q. 그 글을 내레이션으로 영화에 삽입하시면서 기대했던 효과나 우려했던 부분이 궁금하다.
A.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구어체도 아닌 글인데다,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았다 보니 얼마나 보편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래도 말없이 공간만을 보여주는 것은 심심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또 이 공간, 이 건물에도 추억이 서려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계속 진행했다. 실제로 영화제에서 ‘콘크리트의 불안’을 상영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도 반반이었던 것 같다. 그 글 속의 정서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Q. 아무래도 ‘콘크리트의 불안’을 보는 관객이 내레이션 목소리가 전달하는 정서에 얼마나 깊이 젖어드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 그렇다면 ‘콘크리트의 불안’을 보는 관객들이 말하는 이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시길 의도했는가.
A. 저는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내면으로부터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는 아이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저도 어릴 때,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내면으로는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완전히 외부로부터만 영향 받아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어릴 때 내면에 품고 있던 호기심, 세상에 대한 생각, 그네를 탈 때의 몸의 울렁거림, 죽음에 대한 생각…… 우울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생각한다.
Q. 그러한 느낌을 관객이 전달받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영화를 찍는 동안 관객을 얼마나 고려하는가? 또 관객을 고려하는 방향과 감독님이 하고 싶은 방향이 서로 충돌할 때는 없는지 궁금하다.
A. 사실 영화를 만들 때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하지 않고 만들곤 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좀 더 관객에 대한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일단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먼저다. 제가 하려는 것이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그저 이 공간을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니까.
Q. 스카이아파트가 있는 동네 내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무엇을 찍을 지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A.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문득 이 공간에 서 있을 때 제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찍고 싶어졌다. 그 외지고 낡은 마을에 우뚝 섰을 때 보이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스카이아파트가 옛 건축물이이다 보니, 아파트 복도에서 건너편 아파트가 가깝게 보이는 옛날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구조가 보이도록 카메라에 담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낡은 아파트의 물질성, 그걸 찍고 싶었다. ‘콘크리트의 불안’ 에 낙서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파트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낙서들을 보면 개와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만큼 개와 고양이도 많이 살고 있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개 두 마리는 제가 좋아했던 개들인데 스카이아파트가 철거된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개들을 많이 찍었는데 정작 편집할 때는 거의 다 뺐다. 그에 반해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일부러 찍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시 아파트에 남아 있던 것이 대여섯 가구뿐인데다, 낮에는 주민들이 일하러 나가거나 집에만 있거나 해서 찍기 어려웠고, 찍으려고 하더라도 다들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셨기 때문에 찍을 수 없었다.
Q. 작업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없었는가.
A. 글을 입히기 전까지는 사실 아무 대책 없이 계속 공간만 찍어댔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계획 없이 촬영해서 내가 뭘 하려는 것인지, 내가 이 아파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주민 분들이 촬영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그 중 몇몇 분들과 알게 되기도 하고, 제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고마움을 표시한 할머니께서는 집 안을 찍도록 허락해 주시기도 했는데, 중간에 영화의 방향을 틀면서 그 영상들은 영화에서 탈락되었다. 그 때 영화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간, 특히 어릴 때의 좋으면서도 힘든 기억들을 꺼내 보는 계기로서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Q. 그렇다면 영상에 글을 접목시키시는 단계에서, 글의 어느 부분에 영상의 어느 부분을 배치할지는 어떻게 결정했는가.
A. 글 마디와 영상 마디의 그때그때의 만남은 내 느낌에 맞춰서 이루어졌다. 또 글과 함께 나오는 어떤 건물은 다른 건물보다 좀 더 짧게, 혹은 좀 더 길게 잡히곤 한 것을 보셨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장성이 중요한 만큼 촬영 당시의 저를 존중하면서 편집 때 각 장면의 시간 길이를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쓴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있었다. 아이가 자기 자신, 엄마, 동생, 아빠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아파트가 허물어질 때에는 슬프거나 우울한 걸 배치하는 등 큰 흐름을 생각하면서 편집했다.
Q. 영화 속으로 들어가 질문 드리자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는 영화 속 공간에 얼마동안 머물렀는가.
A.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는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릴 때의 기억이란 그런 것 같다. 저는 그 아이가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고 온 또 다른 저라고 느껴진다. 제가 스카이아파트를 보며 떠올린 대구의 작은 아파트에 실제로 살았던 것은 이빨이 한창 빠질 일곱 살 즈음부터 6~7년간의 시간 동안이었다. 저는 한창 이가 빠지고 새로 날 때의 감각이 아직도 강렬하게 떠오르고, 그 때의 시간이 박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이는 그 공간에 아직도 남아 계속 놀면서 웃으면서 울면서 살고 있을 듯하다.
Q.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콘크리트의 불안’을 찍으시면서 실제로 스카이아파트 부근에 얼마나 머무셨는지.
A. 시간은 딱 1년, 사계절을 그곳에서 촬영했다. 처음엔 1년까지 시간을 들일 계획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2~3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찍다 보니 계절감을 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사계절이 흐르도록 그곳에 있게 되었다.
Q. 이 영화가 감독님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가. 감독으로서의 삶이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이든, 아니면 다른 누구로서의 삶이든.
A. 사실 영화를 완성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아서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진 않았다. 다만 기억 속의 어린 저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 계기는 되었다. 글을 쓸 때는 그게 완전히 실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릴 때의 느낌에 가깝게 붙어 있었던 반면, ‘콘크리트의 불안’을 찍는 동안에는 재현이라는 방식이 가져오는 거리 때문에 과거의 느낌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보게 되었다. 아파트를 찍고, 이것을 글과 이어붙이면서, 이빨이 흔들리던 어린 시절의 나와 감정적으로 분리되고 그 때의 나를 존중하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큐멘터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전엔 사람을 찍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만, 공간을 찍으면 그 공간에 대해서만 다루었는데, 영상과 글을 연결 짓는 작업을 하면서 서로 다른 두 요소를 연결하는 일로써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글/취재 임지민
서울의 한 동네에 이빨처럼 뿌리내린 아파트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콘크리트의 불안’은 그 회색빛 콘크리트 이빨을 응시하며 내 안에 이빨처럼 콕콕 박힌 옛 기억들을 호명하는 영화다. 호명의 매 순간마다 첫 이를 뽑을 때와 같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감각들이 스스로를 성큼 드러낸다. 일 년여의 시간 동안 정릉동에 머무르며 스카이아파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장윤미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Q.‘콘크리트의 불안’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A. 영화에 등장하는 스카이아파트는 한 10년 전 제가 인권단체 자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곳이다. 그 때부터 주민들은 건물의 위험성에 대해 항의하며 주민권, 생존권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즈음, 우연히 스카이아파트 관련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되었다. 10년 전부터 사람들이 투쟁해왔는데, 아직도 이 아파트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걸 계기로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예전에는 스카이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다면, 기사를 본 후로는 건물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물 자체의 물질성에 점차 집중하면서 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Q. 영화 속 내레이션이 전달하는 말들은 어디서 온 것인지.
A. 스카이아파트라는 공간에 이끌려서 그곳에 갔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저는 그곳에서 저의 어릴 적 추억을 보았다. 제가 어릴 때 대구에 살았는데, 그 당시엔 지금과 달리 3~5층짜리 작은 아파트가 많았다. 그 땐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추억도 있고, 복작복작 사람 사는 느낌이 있었는데, 최근 대구에 간 김에 그 아파트에 다시 가보니 놀이터도 벤치도 없어지고 허전한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스카이아파트를 보며 제가 한때 살았던, 지금은 쓸쓸해진 그 아파트를 떠올렸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 그 글을 제가 찍은 영상과 연결하게 되었다. 그 글은 한 7~8년 전쯤에 쓴 것인데, 완전히 실화만을 다룬 글은 아니다. 제게는 어릴 적 젖니가 빠질 때의 느낌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문득 떠오른 그 느낌을 바탕으로 내 어릴 때 캐릭터를 생각해서 쓰게 된 반 자전적인 글이다. 저에게는 그 글에 나타난, 이빨이 흔들릴 때 그리고 빠질 때의 느낌과, 스카이아파트가 처한 운명 사이에 유사성이 보였기 때문에 그 글을 내레이션으로 넣은 것이다. 원래는 긴 글이었지만 영화에 넣기 위해 많이 자르고 줄이고, 어울리는 말들만 편집을 했다.
Q. 그 글을 내레이션으로 영화에 삽입하시면서 기대했던 효과나 우려했던 부분이 궁금하다.
A.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구어체도 아닌 글인데다,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담았다 보니 얼마나 보편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그래도 말없이 공간만을 보여주는 것은 심심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또 이 공간, 이 건물에도 추억이 서려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계속 진행했다. 실제로 영화제에서 ‘콘크리트의 불안’을 상영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도 반반이었던 것 같다. 그 글 속의 정서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Q. 아무래도 ‘콘크리트의 불안’을 보는 관객이 내레이션 목소리가 전달하는 정서에 얼마나 깊이 젖어드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 그렇다면 ‘콘크리트의 불안’을 보는 관객들이 말하는 이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하시길 의도했는가.
A. 저는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내면으로부터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는 아이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저도 어릴 때,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내면으로는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완전히 외부로부터만 영향 받아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어릴 때 내면에 품고 있던 호기심, 세상에 대한 생각, 그네를 탈 때의 몸의 울렁거림, 죽음에 대한 생각…… 우울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에 떠올리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생각한다.
Q. 그러한 느낌을 관객이 전달받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영화를 찍는 동안 관객을 얼마나 고려하는가? 또 관객을 고려하는 방향과 감독님이 하고 싶은 방향이 서로 충돌할 때는 없는지 궁금하다.
A. 사실 영화를 만들 때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하지 않고 만들곤 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보다는 좀 더 관객에 대한 생각을 하긴 하지만, 일단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먼저다. 제가 하려는 것이 크게 대단한 일이 아니고, 그저 이 공간을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니까.
Q. 스카이아파트가 있는 동네 내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무엇을 찍을 지는 어떻게 선정했는지.
A. 처음 촬영을 시작할 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문득 이 공간에 서 있을 때 제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찍고 싶어졌다. 그 외지고 낡은 마을에 우뚝 섰을 때 보이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스카이아파트가 옛 건축물이이다 보니, 아파트 복도에서 건너편 아파트가 가깝게 보이는 옛날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구조가 보이도록 카메라에 담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낡은 아파트의 물질성, 그걸 찍고 싶었다. ‘콘크리트의 불안’ 에 낙서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파트 주변에 있는 수많은 낙서들을 보면 개와 고양이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만큼 개와 고양이도 많이 살고 있었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개 두 마리는 제가 좋아했던 개들인데 스카이아파트가 철거된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개들을 많이 찍었는데 정작 편집할 때는 거의 다 뺐다. 그에 반해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일부러 찍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시 아파트에 남아 있던 것이 대여섯 가구뿐인데다, 낮에는 주민들이 일하러 나가거나 집에만 있거나 해서 찍기 어려웠고, 찍으려고 하더라도 다들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하셨기 때문에 찍을 수 없었다.
Q. 작업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없었는가.
A. 글을 입히기 전까지는 사실 아무 대책 없이 계속 공간만 찍어댔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계획 없이 촬영해서 내가 뭘 하려는 것인지, 내가 이 아파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주민 분들이 촬영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그 중 몇몇 분들과 알게 되기도 하고, 제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고마움을 표시한 할머니께서는 집 안을 찍도록 허락해 주시기도 했는데, 중간에 영화의 방향을 틀면서 그 영상들은 영화에서 탈락되었다. 그 때 영화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공간, 특히 어릴 때의 좋으면서도 힘든 기억들을 꺼내 보는 계기로서의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Q. 그렇다면 영상에 글을 접목시키시는 단계에서, 글의 어느 부분에 영상의 어느 부분을 배치할지는 어떻게 결정했는가.
A. 글 마디와 영상 마디의 그때그때의 만남은 내 느낌에 맞춰서 이루어졌다. 또 글과 함께 나오는 어떤 건물은 다른 건물보다 좀 더 짧게, 혹은 좀 더 길게 잡히곤 한 것을 보셨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장성이 중요한 만큼 촬영 당시의 저를 존중하면서 편집 때 각 장면의 시간 길이를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쓴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있었다. 아이가 자기 자신, 엄마, 동생, 아빠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아파트가 허물어질 때에는 슬프거나 우울한 걸 배치하는 등 큰 흐름을 생각하면서 편집했다.
Q. 영화 속으로 들어가 질문 드리자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는 영화 속 공간에 얼마동안 머물렀는가.
A.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무르는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어릴 때의 기억이란 그런 것 같다. 저는 그 아이가 그냥 거기에 내버려두고 온 또 다른 저라고 느껴진다. 제가 스카이아파트를 보며 떠올린 대구의 작은 아파트에 실제로 살았던 것은 이빨이 한창 빠질 일곱 살 즈음부터 6~7년간의 시간 동안이었다. 저는 한창 이가 빠지고 새로 날 때의 감각이 아직도 강렬하게 떠오르고, 그 때의 시간이 박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이는 그 공간에 아직도 남아 계속 놀면서 웃으면서 울면서 살고 있을 듯하다.
Q.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콘크리트의 불안’을 찍으시면서 실제로 스카이아파트 부근에 얼마나 머무셨는지.
A. 시간은 딱 1년, 사계절을 그곳에서 촬영했다. 처음엔 1년까지 시간을 들일 계획은 아니었는데, 중간에 2~3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찍다 보니 계절감을 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사계절이 흐르도록 그곳에 있게 되었다.
Q. 이 영화가 감독님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가. 감독으로서의 삶이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삶이든, 아니면 다른 누구로서의 삶이든.
A. 사실 영화를 완성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아서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진 않았다. 다만 기억 속의 어린 저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 계기는 되었다. 글을 쓸 때는 그게 완전히 실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어릴 때의 느낌에 가깝게 붙어 있었던 반면, ‘콘크리트의 불안’을 찍는 동안에는 재현이라는 방식이 가져오는 거리 때문에 과거의 느낌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보게 되었다. 아파트를 찍고, 이것을 글과 이어붙이면서, 이빨이 흔들리던 어린 시절의 나와 감정적으로 분리되고 그 때의 나를 존중하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큐멘터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전엔 사람을 찍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만, 공간을 찍으면 그 공간에 대해서만 다루었는데, 영상과 글을 연결 짓는 작업을 하면서 서로 다른 두 요소를 연결하는 일로써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글/취재 임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