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데일리


[제26회 대구단편영화제 daily 10] <모과> 오지후 배우 인터뷰


<모과> 오지후 배우 인터뷰



중년 지망생 두 사람이 꿈꾸고 사랑하는 영화 <모과>에서, 희지를 연기한 오지후 배우님을 만났습니다.



우선 <모과>로 이번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되셨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저 역시도 오늘 <모과>의 편집본을 처음 봤습니다. 사실 오디션 장면에서 숨은 눈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쓴 글입니다. 23년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썼는데, 그 생각이 나서 울기도 했습니다. 항상 배우의 입장에서 영화가 공개되면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까 걱정되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다행이고 너무 기분 좋은 현장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에 더해 배우님께서 작품을 선택하시는 기준도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영화 연기 이전에 한 일이, 예술입니다. 길거리 퍼포머도 하고, 연극배우 생활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했거든요. 영화는 아무래도 제가 선택받는 입장이잖아요. 어떤 대본을 받을지 모르는데, 대부분 물리적인 나이에 맞는 역할이 들어옵니다. 아무래도 엄마 역할이 많이 주어지는데, 엄마도 엄마 이전에 여성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서사가 없는 역할이면 정중히 거절해요. 이건 제 개인적인 무브먼트입니다. 그런데 모과 속 희지는 우선 개인적으로 탐났고, 매체 연기를 시작할 때의 나 같아서 그 닮은 구석이 반갑고 짠했습니다.


오프닝에서 희지가 수건의 등을 밟아주는 모습이, “끝까지 버틴다”라는 문구와 함께 보여집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한 장면에 담겨있는데, 처음 시나리오를 보셨을 때 들었던 생각이나 고민 등을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과>를 통해 감독님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연결될 것 같은데, 중년 남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잖아요. 근데 그들이 아직 사회적인 포지션을 가지지 못한 채, 지망생의 입장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꿈을 꾼다고 온전히 자기 의지로 버티기는 팍팍한 현실인 것 같습니다. 수건 역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차선의 선택을 하잖아요. 후반부에 수건이 같이 살자고 하는 것을 희지가 거절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가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희지는 스스로 이 땅에 발 붙이고 싶은 거예요. 그 마음을 아니까 촬영할 때 많이 울었어요. 감독님께서 이 눈물은 헤어질 때를 위해 남겨두자고 하셔서, 담담하고 최대한 꾹꾹 눌러담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희지라는 캐릭터를 구축할 때, 배우님의 지망생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것 같습니다.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쓰신 부분이나, 감독님과 이야기 나눈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백소혜 감독님과 저는 <모과> 이전에 다른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는데, 제가 느낀 감독님은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며 그 결을 읽어내려고 하는 배려심이 있어요. 그것을 시나리오에 온전히 담아내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지라는 인물 자체도 여전히 지망생이고 꿈을 꾸는 사람이지만, 매번 현실에 부딪히잖아요. 현실에 부딪힐 때마다 그래도 한발짝 앞으로 나아갑니다. 궁극적으로 멋진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본연의 의미들, 물론 타인을 재현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 인간이 겪어낼 수 있는 감정을 관통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희지는 그걸 아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극중 제주도 사투리로 아버지께 보내는 독백이 나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보니 직접 쓰신 대사인 것 같은데, 감독님께서 요청하신 걸까요? 대사와 연기 모두를 고민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으셨나요?

시나리오에 아마 오디션이 있다는 정도로 나와있었을 거예요. 감독님이 오디션용으로 몇 자 적어주신 게 있었는데, 그걸 보고 이전에 제가 작업했던 ‘숨은 눈’이라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희지가 할 법한 말이다’ 싶어 감독님께 제안을 드렸습니다.


두 인물의 대화에서 한 사람이 깊게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농담이나 무겁지 않은 응원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곤 하는데, 수건을 연기하신 박종환 배우님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박종환 배우는 워낙 유명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종환 배우의 연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현장에서도 진지하고 열심히 임하는 연기자라고 느꼈고, 종환 배우의 강점이 진지하지만 그게 막 무겁지가 않은 거예요. 무겁다 싶으면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국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베이스인데 우스갯소리지만 뒤풀이에서 “나 수건 정말 좋아했다.”라고 하니까 “다 알고 있었는데요?”라며 스텝들이 웃더라고요. 1달 정도를 같이 보냈는데 온전히 희지로서 수건을 사랑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오디션 장면인 것 같습니다. ‘느루 간다’라는 표현이 ‘느리게 간다’는 뜻인데, 아버지가 제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매번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려운데 왜 예술가를 하려고 하냐며 걱정하실 때마다, “저는 느루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모과>를 보고, 혹여 지금은 다른 꿈을 꾸고 있더라도 어떤 시절의 꿈을 떠올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과를 보면서 ‘함께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독립 단편영화는 배우가 한 명의 스태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배우님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이 삶 안에서 예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매번 예술을 하는 행위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거든요. 내 삶을 돌이켜본다고 하는 건 잠시 멈춰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나의 북극성은 어디인지 매번 살피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독립 단편 영화는 그런 매커니즘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도 그렇고 배우도 그렇고, 현장에 참여하는 모든 스텝들이 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시간과 애정을 담아내거든요. 그게 또 맛인 것 같습니다. 예술이 드라마틱하게 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가뭄에 물 주듯이 조금씩 키워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독립 단편이면 더더욱 좋겠어요.



아직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둘 사이에>와 예술가로서의 행보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글 / 데일리팀 박송주

사진 / 기록팀 김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