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데일리


[제26회 대구단편영화제 daily 20] <오른쪽 구석 위> 이찬열 감독 인터뷰


<오른쪽 구석 위> 이찬열 감독 인터뷰



좌표를 고민하는 영화 <오른쪽 구석 위>의 이찬열 감독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오른쪽 구석 위>를 상영하게 되신 소감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작년에 <트랙_잉>이라는 작품으로 대구단편영화제에 참여했었는데, 올해 다시 올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그리고 다른 상영관도 좋지만, 오오극장이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분들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할 수 있어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중심과 구석, 바다, 잡지 <소년> 중, 영화를 출발하게 한 소재가 궁금합니다. 

어느 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유독 화면이 사다리꼴로 기울어있어서 보는 내내 거슬렸습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카메라는 중심부에 상이 맺히잖아요. 거기에 왜곡이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비슷한 주제들이 될 만한 것들을 모았고, 어느 순간 연결된 지점을 발견했는데 최남선의 시와 일생이기도 하고, 지도라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지도도 원래 지구는 구인데, 평면에 투과하다보니 왜곡이 발생한 거잖아요. 대서양 중심의 지도에서는 하필 대한민국이 구석에 위치해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나는 왜 주인공이 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평소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다는 마음과, 구석에 있는 것을 중심으로 보려 할 때 생기는 왜곡, 어떻게든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려 할 때 발생하는 왜곡 등 서로 다른 요소들을 겹쳐 보면서 구성했던 것 같습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어떤 경로로 보게 되신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과서에 나와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국문학을 전공한 친구와 대화하던 중 바다가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바다를 긍정적으로 다룬 최초의 시라는 말에 흥미로워 바로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소년>의 속뜻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근대화의 기획이었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그로부터 나머지는 주변화되는 서구의 관점인데 곧 식민지가 될 조선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기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의 바램이 한국 콘텐츠가 세상에 나왔을 때 열광하는 마음,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의 원형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인물을 A와 B로 부르는데, 극중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는 이름으로 지으면 그 사람이 계속 떠오르고, 아예 모르는 이름으로 지으면 그것대로 이상해서, 늘 이름 정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이름이 없는 상태로 작업이 진행되던 중, 시나리오 작업을 도와준 친구가 독서 모임을 하니 각자의 닉네임을 지어주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시나리오에도 A이긴 했는데, 이 친구 성격에 고민하다가 결국 임의의 A로 정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유지했고, B는 오월로 바꿨습니다. 나중에 편집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극중에 한 번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더라고요. (웃음)


책 모임에서 인물들의 서로 다른 호흡과 약간씩 어긋나는 대화가 흥미로웠습니다. 디렉팅 과정과 장면에 담긴 의도를 알 수 있을까요?

지인들에게 좋아하는 책과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 내년 계획을 간단히 생각해서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물론 두 주인공의 책과, A에게 계속 질문하는 인물의 대사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독서 모임을 촬영하게 될 일이 있었어요. 글로 기고하거나, 정제된 인터뷰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적당한 자연스러움과 적당한 진지함이 흥미로워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그 자리에서 캐릭터의 많은 부분이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아쉬운 건, 현장이 그렇게 재밌을지 모르고 짜여진 장면에 집중했는데 나중에 후회했습니다.  


로케이션으로 강문해변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인터넷 지도를 영화에 삽입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나는 나로써 중심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잖아요. 그걸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 지도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인터넷 지도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어디도 못 가는 속성이 재밌었는데, 세상이 참 넓어졌고 그와 동시에 내가 더 작아진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로드뷰로 다른 나라의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인터넷 지도는 경험이 극대화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바다는 강릉에서 찍는 게 결정되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영화에 나오는 지명이 강문해변이지만 이미지는 강릉과 양양 사이의 여러 바다가 섞여있습니다. 


다신 볼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B가 다녀간 여행지를 A도 가게 됩니다. 바다 앞에서는 서로 건너편에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기도 하는데 시간과 공간, 그들의 관계를 느슨한 구조로 연결시키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프로젝트성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관계들이 점점 늘어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고부터요. 영화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초기엔 공간과 시간의 층위를 기획했는데, 그 순간에 되게 중요한 경험이지만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는 기억들도 있잖아요. 인물들이 그런 관계인데,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 많은 시간과 공간, 관계들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났지만 먼지처럼 작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체적인 영화의 톤은 흑백인데, 끝에 바다를 컬러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의도하신 바가 있을까요?

여행 갔을 때, 해가 너무 멋있게 지고 있어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교롭게 핸드폰이 꺼져 있어 못 찍고 한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지도에 공간마다 리뷰를 남기니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올라온 사진을 찾아서 보냈습니다. 그 경험을 하며 지도, 중심과 구석, 나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 등의 영화 속 요소가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면을 컬러로 바꾸게 된 이유는, 요즘 핸드폰 카메라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어딘가 아쉽잖아요. 아름다운 곳에 가면 각자의 추억들과 함께 사진을 공유하게 되는데, 그 안에 좋은 이야기와 벅찬 감정들이 담겨있지만 사진 하나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마지막 장면으로 넣고 싶었습니다. 바다를 보는 경험이 A라는 인물에게 무언가를 알게 되는 특별한 순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동시에 지도를 통해서 그 경험을 축소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일상에서 영화를 만나는 이찬열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응원합니다.



글 / 데일리팀 박송주

사진 / 기록팀 김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