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보 (강물결, 2019, 극, 14min, 국내경쟁)
부끄러움을 가르치기
여중생 자영은 털이 많은 자신의 여자친구 시원이 부끄럽다. 털이 많은 게 부끄러운 건지, 시원이 부끄러운 건지, 그런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이 부끄러운 건지는 명확하지 않고 알 수도 없다. 마치 몇 번씩이나 꿈에 나와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는, 어떤 털 많은 여자의 뿌연 실루엣이 안겨주는 아침의 혼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여전히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는 것들이 많고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워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오히려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워할 때가 많고, 가끔은 전혀 부끄럽지 않아도 괜찮은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그 일이란 물론,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는 일이다. 그 친구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순간의 감정에만, 오롯이 충실했다면.
이쯤에서 나는, 자영이와 시원이에게 살짝 미안해진다. 각자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마주 보고, 서로의 부끄러움을 잘 합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힘껏 살아내는 둘의 모습에 비해, 항상 몇 수 앞을 가로질러 계산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수수방관했던, 이제는 철 지난 나의 무심한 이기심 탓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 오는 탓이다. 하지만 결국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두 친구의 부끄러움을 통해서 나는 이제 새로운 부끄러움을 배우게 되었다. 봄날의 교실에 비쳐드는 따사로운 햇살 한 줄기처럼, 환한 미소와 손길로 내게 그것을 가르쳐준, 아름다운 두 친구에게 감사한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최은규
털보 (강물결, 2019, 극, 14min, 국내경쟁)
부끄러움을 가르치기
여중생 자영은 털이 많은 자신의 여자친구 시원이 부끄럽다. 털이 많은 게 부끄러운 건지, 시원이 부끄러운 건지, 그런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이 부끄러운 건지는 명확하지 않고 알 수도 없다. 마치 몇 번씩이나 꿈에 나와 자신의 단잠을 방해하는, 어떤 털 많은 여자의 뿌연 실루엣이 안겨주는 아침의 혼란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여전히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하는 것들이 많고 그중 하나는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워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오히려 어떤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워할 때가 많고, 가끔은 전혀 부끄럽지 않아도 괜찮은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기서 그 일이란 물론,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는 일이다. 그 친구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순간의 감정에만, 오롯이 충실했다면.
이쯤에서 나는, 자영이와 시원이에게 살짝 미안해진다. 각자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마주 보고, 서로의 부끄러움을 잘 합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힘껏 살아내는 둘의 모습에 비해, 항상 몇 수 앞을 가로질러 계산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수수방관했던, 이제는 철 지난 나의 무심한 이기심 탓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려 오는 탓이다. 하지만 결국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두 친구의 부끄러움을 통해서 나는 이제 새로운 부끄러움을 배우게 되었다. 봄날의 교실에 비쳐드는 따사로운 햇살 한 줄기처럼, 환한 미소와 손길로 내게 그것을 가르쳐준, 아름다운 두 친구에게 감사한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최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