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내일 (이하경, 2019, 극, 32min, 국내경쟁)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완벽한 방법: ‘완벽한 내일’은 없다는 믿음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에게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하루 세끼 먹는 밥과 같아야 하고, 배우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에겐 매일매일 다른 누군가의 삶을 입는 일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완벽한 내일>은 방황하는 청춘에게 바치는 공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다. 미진은 배우를 꿈꾸며 살아간다. 정확하게는 배우가 되는 ‘완벽한 내일’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치 없는 일이며, 자신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자신에게 가치 없는 일에 성의를 다하는 지은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요즘 어린 친구들이 (그들이 멋들어진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처한 현실은 언제나 ‘내일’만을 말하는 삶이다. 그녀의 일상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내일’만이 있으며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현재’와 ‘오늘’은 그녀가 싫어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 가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녀를 보는 동안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핑계만 늘어놓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짜증이 나는 한편, 묘하게 공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자신의 것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완벽하지 않은 오늘을 마주하기 힘들었기에 그녀는 ‘완벽한 내일’이 있다는 믿음 아래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낸다. 뚜껑을 열어 실체를 확인하는 것보단, 그저 미지의 냄비를 품에 안은 채 안주하는 편이 감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단기적인 눈가림이라는 건 미진 자신도 알고 있다.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는 하루들이 쌓이면, 완벽한 내일은 더 멀어질 뿐이다. 그녀의 행동이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갔던 건,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번듯한 꿈을 꾸지만, 과연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는지, 억지로 내 길이 아닌 길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물음을 던지기 전에 완벽하진 못해도 나아가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천천히 자문하게 되었다.
미진의 이야기는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공감과 조언의 메시지다. (누군가에겐 질타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꿈을 쫓아 나아가든, 맞닿은 곳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인정하기 시작하든, 미진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통용된다. 어떤 방식이건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작정 완벽한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선 시작하는 것이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한나라
완벽한 내일 (이하경, 2019, 극, 32min, 국내경쟁)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완벽한 방법: ‘완벽한 내일’은 없다는 믿음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이에게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하루 세끼 먹는 밥과 같아야 하고, 배우를 업으로 살아가는 이에겐 매일매일 다른 누군가의 삶을 입는 일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완벽한 내일>은 방황하는 청춘에게 바치는 공감과 조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다. 미진은 배우를 꿈꾸며 살아간다. 정확하게는 배우가 되는 ‘완벽한 내일’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현재 자신이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가치 없는 일이며, 자신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자신에게 가치 없는 일에 성의를 다하는 지은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요즘 어린 친구들이 (그들이 멋들어진 꿈을 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처한 현실은 언제나 ‘내일’만을 말하는 삶이다. 그녀의 일상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내일’만이 있으며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현재’와 ‘오늘’은 그녀가 싫어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 가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녀를 보는 동안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핑계만 늘어놓는 모습에 마음이 불편해지고 짜증이 나는 한편, 묘하게 공감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자신의 것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완벽하지 않은 오늘을 마주하기 힘들었기에 그녀는 ‘완벽한 내일’이 있다는 믿음 아래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낸다. 뚜껑을 열어 실체를 확인하는 것보단, 그저 미지의 냄비를 품에 안은 채 안주하는 편이 감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단기적인 눈가림이라는 건 미진 자신도 알고 있다.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는 하루들이 쌓이면, 완벽한 내일은 더 멀어질 뿐이다. 그녀의 행동이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갔던 건, 그녀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번듯한 꿈을 꾸지만, 과연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맞부딪치고 있는지, 억지로 내 길이 아닌 길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물음을 던지기 전에 완벽하진 못해도 나아가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천천히 자문하게 되었다.
미진의 이야기는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공감과 조언의 메시지다. (누군가에겐 질타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다) 자신이 아직 닿지 못한 꿈을 쫓아 나아가든, 맞닿은 곳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인정하기 시작하든, 미진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통용된다. 어떤 방식이건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무작정 완벽한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선 시작하는 것이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