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슬픔 (오세호, 2019, 극, 30min, 국내경쟁)
당연해서 더욱 이상한,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소위 말하는 ‘대학의 간판’은 여전히 중요한 지표다. 사교육의 현장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을 양성하는 세계이고, 그 속에선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간판을 내건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간판을 쟁취한 자들이 간판을 쟁취하는 자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간판을 쟁취하는 자들을 만드는 순환구조, 학벌주의의 병폐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곳이 사교육의 현장이다.
강사 다미는 지방대학교 출신의 강사다. 학원의 사정으로 인해 수학 강사 자리가 하나로 줄어들고 그녀는 누구나 혹하는 학벌로 무장한 윤하와 남은 강사 자리를 두고 다퉈야 한다. 번듯한 학벌로 포장되어 학교 이름만으로 자신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윤하와 달리, 다미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아주, 아주 당연한 이야기다. 학원은 사교육의 세계고, 사교육 시장에서 대학 간판은 프리패스와 같은 기능을 한다.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자, 아주 간단히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과도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아주는’ 간판을 가지지 못한 다미가 겪는 감정과 생각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출신 대학을 상쇄할 만한 노력이 그저 명패가 없다는 이유로 부정당하는 상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이야기는 ‘다미’라는 한 지방대 출신의 강사가 겪는 학벌 차별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건 그녀의 직업이 가진 업계의 아주 당연한 생리고, 누군가는 학창 시절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들이 모두 맞다곤 해도 교육이 ‘간판’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곳에서 ‘간판’을 지니지 못해, 수많은 ‘간판’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다미의 모습이 옳지는 않다. 그런데도 ‘저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상하게도 슬픈, 그런 이야기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한나라
이상한 슬픔 (오세호, 2019, 극, 30min, 국내경쟁)
당연해서 더욱 이상한,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소위 말하는 ‘대학의 간판’은 여전히 중요한 지표다. 사교육의 현장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을 양성하는 세계이고, 그 속에선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간판을 내건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간판을 쟁취한 자들이 간판을 쟁취하는 자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간판을 쟁취하는 자들을 만드는 순환구조, 학벌주의의 병폐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곳이 사교육의 현장이다.
강사 다미는 지방대학교 출신의 강사다. 학원의 사정으로 인해 수학 강사 자리가 하나로 줄어들고 그녀는 누구나 혹하는 학벌로 무장한 윤하와 남은 강사 자리를 두고 다퉈야 한다. 번듯한 학벌로 포장되어 학교 이름만으로 자신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윤하와 달리, 다미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아주, 아주 당연한 이야기다. 학원은 사교육의 세계고, 사교육 시장에서 대학 간판은 프리패스와 같은 기능을 한다.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자, 아주 간단히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과도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아주는’ 간판을 가지지 못한 다미가 겪는 감정과 생각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출신 대학을 상쇄할 만한 노력이 그저 명패가 없다는 이유로 부정당하는 상황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 이야기는 ‘다미’라는 한 지방대 출신의 강사가 겪는 학벌 차별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건 그녀의 직업이 가진 업계의 아주 당연한 생리고, 누군가는 학창 시절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 말들이 모두 맞다곤 해도 교육이 ‘간판’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곳에서 ‘간판’을 지니지 못해, 수많은 ‘간판’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버티는 다미의 모습이 옳지는 않다. 그런데도 ‘저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상하게도 슬픈, 그런 이야기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