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 (김보원, 2019, 극, 20min, 국내경쟁)
‘여고생’은 우리의 존재가 그저 우월 또는 열등한 유전자를 가려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단 한 과학자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규명키 위하여 여고생은 자아도취한 유튜브 과학자, 노숙자, 가톨릭 신부를 만나게 된다. 여고생은 이 기묘한 만남을 뒤로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찾아내게 된다.
이 독특한 제목의 영화의 시작은 삶의 의미가 ‘좋아요'와 '구독’인 것 같은 기묘한 유튜브 영상이며, 이는 내내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기존의 영화 문법을 떠난 이 직관적인 컷들은 씬으로 구체화 또는 씬으로써 구분되며 일종의 몽타주로 자리한다. 인물들이 위치하는 시공간은 인과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그저 효과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영화가 일견 고전적 로드무비의 서사적 포맷을 취한다는 점에서도 대조적으로 이 스타일은 흥미롭다.
우리는 모두 줄 세워진다고 지적하는 영상이 좋아요와 구독을 부르짖고, 갖은 기준으로 서로 재단하고 또 재단 당하는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의 세계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의 유쾌한 대유이며, 또한 동시에 본질적으로 회의적이다. 어떤 합리적인 기준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영화는 지적하는 듯하다. 세상엔 신의 뜻이나, 우월과 열등의 기준보다 중요한 것들이 반드시 우리 안에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김동하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 (김보원, 2019, 극, 20min, 국내경쟁)
‘여고생’은 우리의 존재가 그저 우월 또는 열등한 유전자를 가려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단 한 과학자의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규명키 위하여 여고생은 자아도취한 유튜브 과학자, 노숙자, 가톨릭 신부를 만나게 된다. 여고생은 이 기묘한 만남을 뒤로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찾아내게 된다.
이 독특한 제목의 영화의 시작은 삶의 의미가 ‘좋아요'와 '구독’인 것 같은 기묘한 유튜브 영상이며, 이는 내내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기존의 영화 문법을 떠난 이 직관적인 컷들은 씬으로 구체화 또는 씬으로써 구분되며 일종의 몽타주로 자리한다. 인물들이 위치하는 시공간은 인과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그저 효과적으로 제시될 뿐이다. 영화가 일견 고전적 로드무비의 서사적 포맷을 취한다는 점에서도 대조적으로 이 스타일은 흥미롭다.
우리는 모두 줄 세워진다고 지적하는 영상이 좋아요와 구독을 부르짖고, 갖은 기준으로 서로 재단하고 또 재단 당하는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의 세계는 우리 삶의 한 부분의 유쾌한 대유이며, 또한 동시에 본질적으로 회의적이다. 어떤 합리적인 기준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영화는 지적하는 듯하다. 세상엔 신의 뜻이나, 우월과 열등의 기준보다 중요한 것들이 반드시 우리 안에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제20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김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