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남인건, 2018, 극, 22min, 애플시네마)
소통이 사라졌다. SNS에 수많은 글이 올라오고 대화가 오가지만, 원하는 정보와 사람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터넷에 진정한 소통은 없다. 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의견을 재확인 받는 대화, 혹은 서 있는 위치에서만 고유한 정보가 흘러 다닌다. 나는 당신을 알기 싫으며, 당신이 나를 알기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만이 아픈 시대. 자기계발 열풍을 지나, 자기우울 열풍이 부는 시대. 현대는 ‘타인’이란 개념을 까먹은 것 같다.
<One Day>는 자기의 세상에 갇힌 남자(하진)가 문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하진은 흙수저 혹은 금수저로 퉁 친 세상을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구체화해 나간다. 외연이 좁은, 장소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명사의 세상(흙수저와 금수저의 세상)은 거짓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동사와 형용사의 세상만이 우리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동사와 형용사의 세상을 보는 창구는 침묵 속에 있단 것이다. 대화와 대화 사이, 상대와 나 사이의 너른 간극은 오직 경청할 때만 가시화된다. <One Day>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침묵이 특히 넓은 영화다.
개인의 일상을 벌거벗기는 자본-효율의 폭력은 맹목적인 “열심히 살아가자”의 집합을 통해서 힘을 얻는다. 공교롭게도, <One Day>의 마지막 장면 즉, 하진이 구두를 신는 장면은 “열심히 살아가자”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진의 “열심히 살아가자”는 맹목적이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던, 오늘은 내일의 일상적 삶을 재배치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
One Day (남인건, 2018, 극, 22min, 애플시네마)
소통이 사라졌다. SNS에 수많은 글이 올라오고 대화가 오가지만, 원하는 정보와 사람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인터넷에 진정한 소통은 없다. 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의견을 재확인 받는 대화, 혹은 서 있는 위치에서만 고유한 정보가 흘러 다닌다. 나는 당신을 알기 싫으며, 당신이 나를 알기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만이 아픈 시대. 자기계발 열풍을 지나, 자기우울 열풍이 부는 시대. 현대는 ‘타인’이란 개념을 까먹은 것 같다.
<One Day>는 자기의 세상에 갇힌 남자(하진)가 문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하진은 흙수저 혹은 금수저로 퉁 친 세상을 타인과의 소통 속에서 구체화해 나간다. 외연이 좁은, 장소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명사의 세상(흙수저와 금수저의 세상)은 거짓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동사와 형용사의 세상만이 우리가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동사와 형용사의 세상을 보는 창구는 침묵 속에 있단 것이다. 대화와 대화 사이, 상대와 나 사이의 너른 간극은 오직 경청할 때만 가시화된다. <One Day>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침묵이 특히 넓은 영화다.
개인의 일상을 벌거벗기는 자본-효율의 폭력은 맹목적인 “열심히 살아가자”의 집합을 통해서 힘을 얻는다. 공교롭게도, <One Day>의 마지막 장면 즉, 하진이 구두를 신는 장면은 “열심히 살아가자”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하진의 “열심히 살아가자”는 맹목적이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었던, 오늘은 내일의 일상적 삶을 재배치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