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선 Kim Heesun (김민주, 2018, 극, 26min, 국내경쟁)
자기소개에서 이름은 필수지만, 자기를 소개하는 데 있어 이름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다. 이름이란 단지, 불리어질 때만 효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그것도 당신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춘)이 주변에 있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단지 같은 이름으로 “불릴 뿐”인데도 불구하고, 동명이인이란 말은 대차대조표를 낳는 법이다. “이름은 같은 데 왜 이렇게 다르냐!”고 말이다.
동명이인이란, 전혀 무관함에도 엮이고 마는 관계가 <김희선>의 전제다. 이름이라도 같지 않았다면 비교의 준거조차 성립하지 않았을 만큼, 주인공-김희선과 대상-김희선의 차이는 크다. 주인공-김희선은 그저 조연-김희선이 표상하는 것들을 갖고 있는 체 하며 좇을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희선>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음악 소리가 들리고, 김희선은 허공에 기타를 친다. 기타를 “있는 체 한다” 희선의 “있는 체”를 관통하는 물건은 이어폰이다. 오른쪽이 들리지 않는 이어폰. 희선의 “있는 체”는 그녀의 만족을 반밖에 매워주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희선은 조금 처연한 표정으로 잠에 든다. ‘김희선’이란 이름에서 말미암는 허상의 대차대조표를 어느 정도 떼어낸 희선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을까. 비루한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픔이었을까. 혹은 폐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시작할 수 있는 기쁨이었을까. 그녀의 꿈의 자리가 조금 궁금해진다.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
김희선 Kim Heesun (김민주, 2018, 극, 26min, 국내경쟁)
자기소개에서 이름은 필수지만, 자기를 소개하는 데 있어 이름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다. 이름이란 단지, 불리어질 때만 효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인물(그것도 당신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춘)이 주변에 있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단지 같은 이름으로 “불릴 뿐”인데도 불구하고, 동명이인이란 말은 대차대조표를 낳는 법이다. “이름은 같은 데 왜 이렇게 다르냐!”고 말이다.
동명이인이란, 전혀 무관함에도 엮이고 마는 관계가 <김희선>의 전제다. 이름이라도 같지 않았다면 비교의 준거조차 성립하지 않았을 만큼, 주인공-김희선과 대상-김희선의 차이는 크다. 주인공-김희선은 그저 조연-김희선이 표상하는 것들을 갖고 있는 체 하며 좇을 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희선>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음악 소리가 들리고, 김희선은 허공에 기타를 친다. 기타를 “있는 체 한다” 희선의 “있는 체”를 관통하는 물건은 이어폰이다. 오른쪽이 들리지 않는 이어폰. 희선의 “있는 체”는 그녀의 만족을 반밖에 매워주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희선은 조금 처연한 표정으로 잠에 든다. ‘김희선’이란 이름에서 말미암는 허상의 대차대조표를 어느 정도 떼어낸 희선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을까. 비루한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아픔이었을까. 혹은 폐허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시작할 수 있는 기쁨이었을까. 그녀의 꿈의 자리가 조금 궁금해진다.
제19회 대구단편영화제 관객리뷰어 금동현